팀원들이 자신을 리더로 보는 불편함과 책임감

팀원들이 자신을 리더로 보는 불편함과 책임감

아침부터 슬랙 멘션 출근하자마자 슬랙 멘션 5개. "개발님, 이거 어떻게 하면 될까요?" "DB 설계 리뷰 부탁드립니다." "이 라이브러리 써도 될까요?" 커피도 안 마셨다. 9시 2분. 다들 나한테 물어본다. 2년차 박신입부터 4년차 최선임까지. 정작 팀장은 회의 중이고, 나는 그냥 7년차다. 직책 없다. 월급도 제일 많이 받는 것도 아니다. 근데 왜 다들 나한테 물어보는 거지.점심시간 회피 식당 가는 길에 3년차 이주니어가 붙었다. "선배님, 아까 그 API 설계 괜찮을까요? 제가 생각한 건..." 밥 먹으면서도 기술 얘기. 김치찌개 식었다. 사실 이주니어 실력 괜찮다. 근데 확신이 없는 거다. 그래서 내 승인을 받으려고 한다. 마치 내가 리더인 것처럼. 근데 나는 리더가 아니다. 팀장은 따로 있다. 40대 중반. 개발은 안 한 지 5년 됐다. 회의만 한다. 기술적 결정은 "개발님이 잘 아시니까 알아서 하세요" 라고 한다. 알아서 하라고? 책임은? 월급은 똑같이 받으면서.PR 리뷰의 무게 오후 2시. PR 7개 쌓였다. 다들 내 리뷰 기다린다. 팀장 리뷰는 형식적이다. "수고하셨습니다" 도장만 찍는다. 실제로 코드 보는 건 나다. 어제 신입이 올린 PR. 200줄짜리 함수. "이렇게 하면 나중에 유지보수 힘들어요. 함수 분리하고 다시 올려주세요." Comment 달았다. Request changes. 10분 뒤 슬랙. "선배님 죄송한데 어떻게 분리하면 될까요?" 한숨 나온다. 근데 알려줘야 한다. 안 알려주면 계속 이렇게 짠다. 그럼 나중에 내가 고친다. 결국 화면 공유 켜고 30분 설명했다. 내 일은 언제 하지.기술 스택 선택의 부담 오후 4시. 기획 회의. 새 프로젝트다. 마이크로서비스로 갈지 모놀리식으로 갈지 정해야 한다. 팀장이 나를 본다. "개발님 의견이 어떠세요?" 5명 다 나를 본다. 내가 말하면 그게 결정이다. 팀장은 내 의견에 무조건 동의한다. "전문가가 그렇다는데 그렇게 하시죠." 책임은? 3개월 뒤 문제 생기면? "제 생각엔 일단 모놀리식으로 시작하는 게..." 말하는데 목소리 떨렸다. 근데 이게 맞나.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내가 틀리면 어쩌지. 팀원들 야근시키는 거 아닌가. 직책도 없는데 이런 결정을 내가 해야 하나. 월급은 6500이다. 책임과 권한의 불균형 퇴근길. 지하철에서 생각했다. 나는 사실상 테크 리드다. 팀원들도 그렇게 본다. 기술적 결정은 다 내가 한다. 근데 내 직함은 "책임연구원"이다. 팀장 밑에 그냥 팀원이다. 연봉 협상 때 팀장이 말했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서... 내년엔 올려드릴게요." 근데 후배 채용 공고 봤다. 신입 연봉 4500. 7년차 나는 6500. 3년 일해서 2천 올랐다. 동기 민수는 이직해서 8천 받는다. 리드 개발자 직함 달고. 나는 직함도 없이 리드 일만 한다. 권한은 없다. 팀 예산 결정권 없다. 인력 충원 요청해도 "검토해보겠습니다"만 6개월째다. 근데 책임은 진다. 배포 장애 나면 새벽에 전화 온다. 내가 설계한 거니까. 후배들의 기대 문제는 후배들이다. 진심으로 나를 믿는다. 기술적으로. 신입 박신입은 입사 첫날부터 내 자리 옆에 앉았다. "선배님한테 배우고 싶어요." 2년차 이주니어는 내가 추천한 책 다 읽었다. 클린 아키텍처, DDD, 리팩터링. 다 샀다. 4년차 최선임은 이직 고민 상담을 나한테 한다. 팀장한테는 안 한다. 이 기대가 무겁다. 내가 틀린 방향 알려주면 어쩌지. 내가 잘못된 결정 내리면 다들 따라온다. 근데 나도 확신 없을 때 많다. AWS 쓸지 GCP 쓸지. Redis 쓸지 Memcached 쓸지. 테스트 커버리지 몇 퍼센트까지 잡을지. 정답 없다. 트레이드오프다. 근데 선택은 해야 한다. 내가 선택하면 팀 전체가 3개월 그 방향으로 간다. 이게 리더의 무게구나. 근데 나는 리더가 아니다. 월급도 리더급이 아니다. 인정받지 못하는 역할 더 웃긴 건 윗선이다. 분기 회의 때 팀장이 발표한다. 우리 팀 성과. "저희 팀이 이번 분기에 마이크로서비스 전환 성공했습니다." 박수 나온다. 팀장 칭찬받는다. 근데 설계한 건 나다. 문서 작성도 나. 마이그레이션 계획도 나. 팀장은 회의만 했다. 인사 평가 때도 마찬가지다. "김 연구원은 기술적으로 우수하나, 리더십이 부족합니다." 리더십? 매일 후배 가르치고, PR 리뷰하고, 기술 결정하는 게 리더십 아닌가. 아. 리더십이 아니라 "보고 잘하기"를 말하는 거구나. 팀장한테 잘 보고하고, 임원진 앞에서 발표 잘하는 거. 나는 그냥 코드나 짜는 사람. 근데 실제로는 팀 기술 다 책임진다. 모순이다. 거절의 어려움 요즘 고민이 하나 더 생겼다. 거절을 못 하겠다. 후배가 물어보면 답해줘야 한다. 안 그러면 혼자 삽질한다. 그럼 나중에 내가 고친다. 차라리 지금 30분 쓰는 게 낫다. 근데 이게 매일이다. 하루에 2시간은 후배 도와준다. 내 개발 시간은 6시간에서 4시간으로 줄었다. 퇴근도 늦어진다. 내 일 못 끝내서. 팀장한테 말했다. "제가 후배들 가르치느라 제 일을 못 하겠어요." 팀장 답변. "그래도 팀워크가 중요하잖아요. 김 연구원이 잘 이끌어줘야죠." 이끌라고? 그럼 직책 달아줘. 월급 올려줘. 아무 말 안 했다. 해봤자 소용없다. 이직 고민 집에 와서 이력서 켰다. 6개월 전에도 켰다. 3개월 전에도 켰다. 매번 닫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귀찮다. 면접 준비해야 한다. 알고리즘 공부. 시스템 설계. 포트폴리오 정리. 퇴근하면 기력이 없다. 넷플릭스 켜놓고 폰 본다. 주말엔 늦잠 자고 치킨 먹는다. 코딩 테스트 볼 에너지가 없다. 그래서 계속 미룬다. 근데 이러다가 10년차 되는 거 아닌가. 10년차에도 6500 받으면서 리더 일만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하면 답답하다. 근데 뭐 어쩌겠나. 내일도 출근해야 한다. 애매한 위치 결국 내 위치가 애매한 거다. 리더도 아니고 평팀원도 아니다. 책임은 리더급. 권한은 팀원급. 월급도 팀원급. 가장 불편한 자리다. 올라가지도 못하고 내려가지도 못한다. 팀장은 내가 편하다. 기술 걱정 안 해도 되니까. 나한테 다 맡기면 되니까. 후배들도 내가 편하다. 물어보면 답해주니까. 고민 안 해도 되니까. 나만 불편하다. 근데 말 안 한다. 해봤자 바뀌는 게 없다. 그냥 하루하루 버틴다. 언젠가는 바뀌겠지. 승진하거나. 이직하거나. 아니면 그냥 익숙해지거나. 지금은 그냥 버틴다. 책임감의 무게 솔직히 말하면. 후배들 믿고 따르는 거 나쁘지 않다. 내 말 듣고 성장하는 거 보면 뿌듯하다. 6개월 전 아무것도 모르던 신입이 지금은 혼자 API 설계한다. 내가 가르쳤다. 근데 이 뿌듯함만으로는 안 된다. 책임감만 늘어난다. 월급은 그대로다. 회사는 이걸 안다. 그래서 안 올려준다. 어차피 일 하니까. 내가 바보같다. 거절해야 하는데. 내 일만 해야 하는데. 근데 못 한다. 후배들 보면. 이게 리더의 함정인가. 정식 리더는 아닌데 리더 역할을 하는. 가장 손해 보는 위치. 내일도 멘션 내일 출근하면 또 슬랙 멘션 5개 있을 거다. "개발님 이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럼 또 답할 거다. 30분 써서. 내 일은 점심 먹고 시작할 거다. 퇴근은 7시? 8시? 운 좋으면 6시. 이게 7년차 시니어 개발자의 일상이다. 리더 아닌 리더. 책임만 있고 권한 없는. 월급은 6500. 동기들은 8천. 그래도 출근한다. 어쩌겠나. 이게 내 선택이었으니까. 아니다. 선택이 아니라 흘러온 거다. 7년 일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 내일은 뭐가 달라질까. 아무것도. 그냥 하루가 지나간다. 멘션 5개 답하고. PR 7개 리뷰하고. 회의 2시간 하고. 그렇게 한 달 지나가고. 1년 지나가고. 10년차 되겠지. 그때도 이럴까.정식 리더도 아닌데 리더 대접받는 게 제일 애매하다. 책임은 지는데 돈은 안 받는다.

네트워킹을 해야 하는데 피곤해서 못 할 때

네트워킹을 해야 하는데 피곤해서 못 할 때

네트워킹을 해야 하는데 피곤해서 못 할 때 오늘도 단톡방만 눈팅 슬랙에 알림이 떴다. "이번 주 토요일 스프링 밋업 있는데 누구 갈 사람?" 읽었다. 답 안 했다. 작년부터 똑같은 패턴이다. 개발자 커뮤니티 단톡방이 5개다. "스프링 코리아", "백엔드 개발자 모임", "서울 개발자", 뭐 이런 것들. 가입할 땐 의욕 넘쳤다. "나도 네트워킹 해야지!" 했다. 근데 막상 밋업 공지 뜨면 그냥 넘긴다. 읽씹한다. 가끔 이모지 하나 찍는 게 전부다. 토요일 오후 2시에 강남이래. 2시면 늦잠 자고 일어나서 브런치나 먹을 시간이다. 거기서 강남까지 지하철로 40분. 밋업 끝나면 5시. 집 도착하면 7시. 계산기 두드리면서 한숨 나왔다. 그냥 집에서 넷플릭스 보는 게 낫겠다 싶었다.피곤한 건 진짜다 목요일 밤 9시. 배포 끝났다. 집 도착하니까 10시 반. 씻고 누우니 11시. 핸드폰 보다가 1시. 금요일 아침 8시 알람. 눈 뜨는데 3분 걸렸다. 커피 마셔도 머리가 안 돌아간다. 오전에 PR 리뷰 5개. 점심 먹고 회의 2개. 오후엔 버그 픽스. 퇴근하니까 7시. 이 상태로 토요일 밋업? 웃긴 소리다. 사람들은 말한다. "주말인데 뭐." 주말이라서 더 쉬고 싶은 거다. 평일에 쓴 에너지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 새로운 사람 만나서 명함 돌리고 스몰토크하는 건 에너지가 더 든다. 내향형이라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근데 솔직히 외향형이어도 피곤하면 못 갈 것 같다. 밋업 가는 친구한테 물어봤다. "어떻게 매주 가냐?" "그냥 가요. 가면 재밌어요." 가기 전까지가 문제라는 거다. 나도 안다. 가면 괜찮을 거라는 걸. 근데 그 "가기 전까지"를 못 이긴다.링크드인 구경만 300번 링크드인 켰다. 피드 스크롤했다. "DevFest 2024 다녀왔습니다! 좋은 분들 많이 만났어요 #networking" 사진엔 20명이 웃고 있다. 부럽다. 진짜로. 나도 저렇게 찍고 싶다. "김개발도 네트워킹 하는구나!" 하는 포스팅. 근데 현실은 집 소파다. 치킨 시켜놓고 폰 본다. 링크드인 프로필 업데이트한 게 8개월 전이다. 이력서도 똑같다. 1년 전에 만든 거 그대로다. "언젠간 고쳐야지" 하는데 안 고쳐진다. 이직 준비도 마찬가지다. 알고리즘 문제 풀어야 하는데 안 푼다. "다음 주부터" 가 3개월째다. 네트워킹하면 이직도 쉽다더라. "요즘 개발자는 레퍼럴로 이직해요." 맞는 말이다. 근데 레퍼럴 받으려면 사람을 알아야 한다. 사람을 알려면 밋업을 가야 한다. 밋업 가려면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무한 루프다. 결국 토요일엔 집에서 유튜브 봤다. "개발자 네트워킹 방법" 영상 3개 봤다. 아이러니하다.온라인도 사실 귀찮다 "오프라인이 부담되면 온라인으로 하세요." 자기계발 아티클에서 봤다. 시도했다. 진짜로. "스프링 디스코드" 들어갔다. "자바 카톡방" 가입했다. "노션 슬랙" 찬 받았다. 3개 다 알림 껐다. 디스코드는 메시지가 너무 많다. 하루 자고 일어나면 300개다. 다 읽으려면 30분 걸린다. 읽어도 맥락을 모르겠다. "아까 그 얘기인데요" 하는데 아까가 언제인지 모른다. 카톡방은 더하다. 새벽 3시에도 울린다. "이거 어떻게 해결하셨어요?" 자고 있는데 폰이 진동한다. 알림 끄면 대화 따라가기 힘들다. 슬랙은 그나마 낫다. 근데 회사 슬랙도 있고 팀 슬랙도 있다. 거기에 커뮤니티 슬랙까지 3개. 어디서 누가 멘션했는지 헷갈린다. 결국 다 눈팅만 한다. 가끔 좋은 정보 올라오면 북마크만 한다. 북마크 폴더엔 안 읽은 링크가 247개다. 온라인 네트워킹도 에너지가 든다는 걸 깨달았다. 대화에 끼려면 맥락을 알아야 한다. 맥락 알려면 계속 봐야 한다. 계속 보려면 시간을 써야 한다. 퇴근하고 그럴 시간 없다. 회사 사람들이랑도 안 어울린다 금요일 저녁 6시. "형 회식 가시죠?" "나 먼저 갈게." 회사 동료들이랑도 안 논다. 팀 회식은 년 2번 의무참석. 그 외엔 핑계 대고 빠진다. "회사 네트워킹이라도 하세요." 선배가 그랬다. "같은 회사 사람이 나중에 다른 회사 가면 레퍼럴 해줘요." 맞는 말이다. 근데 그것도 피곤하다. 팀원 5명이랑은 매일 본다. 스탠드업 미팅에서 본다. 점심 먹을 때 본다. 커피 마실 때 본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퇴근해서까지 볼 이유를 모르겠다. 한 달에 한 번 회사 전체 회식이 있다. 100명 넘게 모인다. 인사팀에서 "네트워킹 기회입니다!" 한다. 가면 아는 사람들끼리만 모인다. 모르는 사람한테 말 걸기 어렵다. 명함 주고받는 것도 어색하다. "김개발입니다. 백엔드 하고요." "아 네. 저는 프론트입니다." 이러고 끝난다. 결국 30분 있다가 집 간다. "배 아프다" 핑계 댄다. 거짓말은 아니다. 진짜 배 아프다. 스트레스로. FOMO는 있다 그래도 불안하긴 하다. "다들 네트워킹하는데 나만 안 하면?" "기회를 놓치는 건 아닐까?" FOMO다. Fear of Missing Out. 알면서도 느낀다. 링크드인 보면 심해진다. 동기가 컨퍼런스에서 발표했다. 후배가 밋업 주최했다. 선배가 스타트업 창업했다. 나는? 집에서 넷플릭스 본다. 이력서는 1년째 그대로다. 가끔 생각한다. "5년 뒤에도 이럴까?" "10년 뒤엔?" 무섭다. 솔직히. 개발자는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한다. "요즘 채용은 다 레퍼럴이에요." "좋은 프로젝트는 아는 사람한테 오더라고요." 맞는 말 같다. 근데 당장 내일 밋업 가라고 하면 안 갈 것 같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다. "해야 한다"와 "할 수 있다"의 차이. 해야 하는 건 안다. 근데 못 한다. 피곤해서. 그냥 쉬고 싶다 결론은 간단하다. 쉬고 싶다. 그냥. 평일엔 회사 일로 에너지 다 쓴다. PR 리뷰하고 회의하고 코드 짠다. 9시간 집중한다. 퇴근하면 탈진 상태다. 주말까지 네트워킹하면? 쉴 시간이 없다. 월요일에 또 출근해야 한다. 그럼 언제 쉬지? "주말에 투자해야 평일이 편해져요." 누가 그랬다. 아니다. 주말에 쉬어야 평일을 버틴다. 재충전이 필요하다. 배터리 0%로는 못 산다. 집에서 뒹굴거리는 것도 생산적인 거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나를 회복시킨다. 다음 주를 위한 준비다. 네트워킹은 중요하다. 근데 내 건강도 중요하다. 정신 건강도 포함해서. 번아웃 오면 끝이다. 네트워킹 이전에 일을 못 한다. 우선순위가 있다.회사 일 제대로 하기 건강 챙기기 그 다음에 네트워킹지금은 2번도 제대로 못 한다. 3번은 나중 일이다. 언젠간 하겠지 포기한 건 아니다. 미룬 거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스스로 합리화한다. 실제로 그럴 수도 있다. 커리어 초반엔 네트워킹보다 실력이 먼저다. 실력 없으면 네트워크 소용없다. 7년차면 이제 좀 쌓였다. 실력은. 근데 에너지는 줄었다. 아이러니하다. 주니어 때는 에너지 있었는데 자신감이 없었다. 시니어 되니까 자신감 생겼는데 에너지가 없다. 타이밍이 안 맞는다. 언젠간 갈 것 같다. 밋업. "오늘은 좀 괜찮네?" 하는 날. 기분 좋고 날씨 좋고 컨디션 좋은 날. 그런 날이 올까? 잘 모르겠다. 근데 안 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네트워킹이 커리어의 전부는 아니니까. 조용히 일 잘하는 개발자도 있다. 나는 그쪽인 것 같다.토요일 오후 3시. 소파에서 일어났다. 밋업 시간이다. 안 갔다. 대신 커피 내려 마셨다. 이것도 괜찮다.

동기들은 7천대, 나는 6500만원: 합리화의 기술

동기들은 7천대, 나는 6500만원: 합리화의 기술

술자리에서 들은 숫자대학 동기 모임이었다. 1년 만이었다. 고기 굽다가 준호가 말했다. "나 이번에 연봉 협상했는데." 7200만원이란다. 작년보다 500 올랐다고. 민수가 거들었다. "나도 비슷해. 7100?" 나는 고기를 뒤집었다. 입에서 "오 좋네" 같은 소리가 나왔다. 속으로는 계산기가 돌아갔다. 6500만원. 내 연봉. 700만원 차이. 한 달에 60만원. 세후로 치면... 계산 그만. "개발아, 너는?" 준호가 물었다. "비슷해." 거짓말이었다. "우리 회사 연봉 체계가 좀 달라서." 또 거짓말. 집에 오는 택시 안에서 계속 생각했다. 700만원. 700만원. 창밖을 봤다. 아무것도 안 보였다. 월요일 아침의 합리화 출근했다. 자리에 앉았다. 모니터를 켰다. 슬랙이 떴다. 읽지 않은 메시지 37개. 주말에 쌓인 거다. '준호네 회사는 더 크니까.' 첫 번째 합리화가 시작됐다. 직원 3000명. 우리는 300명. 10배 차이. 근데 3000명이면 더 바쁜 거 아닌가? 아닐 수도. 분업이 잘 돼 있을 수도. '민수는 금융권이잖아.' 두 번째. 금융권은 원래 연봉이 높다. 대신 야근이 심하다고 들었다. 들었다. 확인은 안 해봤다. 커피를 마셨다. 첫 번째 아아. 9시 17분이었다. 영수가 슬랙에 멘션을 날렸다. "형 이거 봐주실 수 있으세요?" PR 링크. 또 시작이다. 코드를 봤다. 변수명이 'data1', 'data2'. 한숨이 나왔다. "여기 네이밍 다시 해봐." 댓글을 달았다. 친절하게. '우리 회사는 여유롭잖아.' 세 번째 합리화. 9시 출근 6시 퇴근. 칼퇴 가능. 가끔. 배포일만 아니면. 그리고 버그만 안 터지면. 그리고 기획 변경만 안 들어오면. 점심시간의 계산김치찌개집에 갔다. 혼자. 사장님이 "어서오세요 김 과장님~" 하셨다. 과장 아닌데. 뭐 됐다. 밥을 먹으면서 폰으로 계산했다. 700만원 차이. 12개월로 나누면 월 58만원. 세후로 치면 43만원 정도? 43만원이면 뭐가 가능한가. 치킨 10번. 넷플릭스 프리미엄 3년 치. 아니면 월세를 좀 더 좋은 데로. 근데 나는 치킨을 월 10번이나 안 먹는다. 넷플릭스는 이미 있다. 이사는 귀찮다. '그럼 연봉이 똑같아도 별 차이 없는 거 아냐?' 이상한 논리였다. 나도 알았다. 하지만 국물을 떠먹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서. "잘 먹었습니다." 카드를 내밀었다. 7500원. 43만원이면 이 밥을 57번 더 먹을 수 있다는 계산이 또 돌았다. 오후 회의에서 3시 회의. 기획팀과. 수진 매니저가 말했다. "이 기능 추가 간단하죠?" 간단하지 않았다. DB 스키마 변경. API 3개 수정. 테스트 케이스 전부 다시. "한 2주 정도 걸릴 것 같은데요." 내가 말했다. "에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요." 생각보다? 누구 생각? '준호는 이런 거 안 당할 텐데.' 갑자기 든 생각. 큰 회사는 기획자가 더 전문적일 거다. 개발 공수를 이해할 거다. 아마도. 또 합리화가 시작됐다. '우리 회사는 작아서 소통이 편하잖아.' 편한가? 지금 이 회의가 편한가? 기획자는 내 표정을 보고 말을 바꿨다. "그럼 3주 드릴게요." 1주 더 받았다. 작은 승리였다. 기분이 나아지진 않았다. 회의가 끝났다. 자리로 돌아왔다. 슬랙 알림 12개. '민수네는 이것보단 체계적이겠지.' 또 합리화. 확인해본 적 없는데. 퇴근길의 자문자답6시 45분에 나왔다. 오늘은 일찍 나온 거다. 지하철을 탔다. 자리가 없었다. 손잡이를 잡았다. '나는 만족하고 있나?' 질문이 떠올랐다. 대답이 안 나왔다. 만족은 아니다. 그렇다고 불만도 아니다. 그 중간 어디쯤. '그럼 이직해야 하나?' 이력서 쓰기. 포트폴리오 정리. 코딩 테스트 준비. 면접. 피곤하다. 상상만으로. '지금 회사가 나쁜 건 아니잖아.' 동료들은 괜찮다. 영수는 귀찮지만 배우려고 한다. 기획팀도 나쁜 사람들은 아니다. 그냥 일이 그런 거다. 출퇴근 시간도 나쁘지 않다. 1시간. 딱 봐줄 만. '그럼 이대로 계속?' 대답이 또 안 나왔다. 집 앞 편의점에 들렀다. 맥주 2캔을 샀다. 4600원. 700만원 차이로 살 수 있는 맥주는 몇 캔일까. 또 이런 계산. 웃겼다. 나 자신이. 집에서 아내와 문을 열었다. "다녀왔어." 아내가 소파에 있었다.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저녁 뭐 먹어?" 아내가 물었다. "라면?" 내가 말했다. "좋아." 라면을 끓였다. 물이 끓는 동안 멍하니 냄비를 봤다. '아내한테 말해볼까?' 연봉 차이 얘기. 합리화하는 내 모습. 근데 말하면 뭐가 달라지나. 아내가 "이직해" 할 수도. "괜찮아" 할 수도. 둘 다 듣고 싶지 않았다. 라면이 끓었다. 계란을 넣었다. "오늘 일 어땠어?" 아내가 물었다. "그냥. 평범했어." 거짓말은 아니었다. 진짜 평범한 하루였다. 머릿속만 복잡했을 뿐. 라면을 먹었다. 아내는 디자인 시안 얘기를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중은 안 됐다. 머릿속에선 여전히 계산기가 돌았다. 700만원. 58만원. 43만원. 자기 전 침대에서 침대에 누웠다. 폰을 켰다. 유튜브를 봤다. 개발자 이직 브이로그. 추천 영상에 떴다. "연봉 3000 올렸습니다" 제목. 클릭했다. 5분 보다가 껐다. 부러웠다. 동시에 짜증났다. '나도 할 수 있다.' 생각했다. '하기 싫을 뿐.' 차이가 뭔가.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거랑 못 하는 거. 나는 어느 쪽인가. 모르겠다. 솔직히. '지금도 괜찮은데.' 다시 합리화. 월급은 밀린 적 없다. 야근은 견딜 만하다. 사수 없이 혼자 일하는 거보단 낫다. 근데 그게 만족인가? 아니면 그냥 귀찮은 건가? 폰을 내려놓았다. 천장을 봤다. '동기들이 7천대라는 걸 몰랐으면.' 이 생각이 제일 솔직했다. 모르면 비교 안 했을 거다. 비교 안 하면 만족했을 거다. 아마도. 근데 알아버렸다. 이제 모를 수 없다. 눈을 감았다. 잠이 안 왔다. 내일도 출근이다. 9시. 슬랙 알림. PR 리뷰. 회의. 평범한 하루. 머릿속에선 계산기가 계속 돌았다. 결국 남은 건 아침이 왔다. 알람이 울렸다. 7시. 씻고 나갔다. 출근했다. 자리에 앉았다. 모니터를 켰다. 슬랙. 읽지 않은 메시지 23개. '오늘도 똑같네.' 근데 다른 게 하나 있었다. 어제까지는 이게 당연했다. 오늘부터는 선택처럼 느껴진다. 이직할 수도 있다. 안 할 수도 있다. 연봉을 올릴 수도 있다. 이대로 갈 수도 있다. 근데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안 한다. 합리화만 한다. "지금도 괜찮아." "이직은 귀찮아." "동기들은 환경이 달라." 다 맞는 말이다. 동시에 다 핑계다. 진짜 문제는 뭔가. 만족도 불만도 아닌 이 어정쩡한 상태에서, 움직이기엔 에너지가 부족하고, 참기엔 자존심이 걸린다는 것. 그리고 그걸 인정하기 싫어서 계속 이유를 만든다는 것. 영수가 슬랙에 멘션을 날렸다. "형 이거 봐주세요." 또 PR이다. "어 본다." 답장을 보냈다. 코드를 열었다. 리뷰를 시작했다. 700만원 차이 생각은 잠시 멈췄다. 일은 계속됐다. 합리화도.결국 나는 아직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 내일도 똑같을 거다. 모레도. 언젠가 바뀔까? 모르겠다. 오늘은 일단 커피나 한 잔 더 마셔야겠다.

매니저가 없는 팀: 누가 책임질까?

매니저가 없는 팀: 누가 책임질까?

매니저가 없는 팀: 누가 책임질까? 팀장 없는 팀의 아침 월요일 아침 9시. 우리 팀 자리에 앉는다. 5개 모니터가 켜진다. 근데 팀장 자리는 비어있다. 원래 없다. 우리 팀은 7년 전부터 그랬다. 정식 팀장이 없다. 처음엔 이상했다. 지금은 익숙하다. 슬랙에 메시지가 온다. 기획팀에서. "이번 기능 일정 언제까지 가능할까요?" 나한테 온다. 항상 나한테 온다. "아 그거요. 확인하고 알려드릴게요." 내가 답한다. 팀원들한테 물어볼 것도 없다. 그들도 모른다. 내가 알아서 답해야 한다.권한 없는 책임자 내 직함은 "선임 개발자"다. 그게 다다. 팀장 아니다. 리더 아니다. 그냥 제일 오래 있었다. 근데 실제로는? 전부 다 한다. 일정 조율. 업무 분배. 코드 리뷰. 아키텍처 결정. 신입 교육. 장애 대응. 다른 팀 커뮤니케이션. 월급은? 6500만원. 다른 회사 팀장들은 8천 넘게 받는다는데. 권한은? 없다. 휴가 승인? 부장한테 물어봐야 한다. 채용? 인사팀 통해서. 성과 평가? 내가 쓰긴 하는데 최종은 부장이 한다. 웃긴 건 부장은 우리 팀 업무를 모른다. 당연하다. 개발 안 해본 지 10년 됐으니까. 애매한 위치의 현실 지난주 금요일. 신입이 실수로 프로덕션 DB에 잘못된 쿼리를 날렸다. 부장한테 전화 왔다. "어떻게 된 거냐?" "죄송합니다. 제가 미리 확인했어야 했는데." 내가 사과했다. 신입은 옆에서 얼굴이 하얗다. 복구하는 데 3시간 걸렸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다. 월요일 아침. 신입이 사표를 썼다고 한다. 부장한테. 나는? 아무도 안 물어봤다. 권한이 없으니까. "저는 계속 일하고 싶은데요." 신입이 나한테 말했다. "부장님한테 말씀드려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다였다. 결국 부장이 붙잡았다. 나는 구경만.자유라는 이름의 책임 좋은 점도 있다. 많다. 솔직히. 회의가 적다. 부장이 관여 안 하니까. 우리끼리 결정하면 끝이다. 기술 스택 선택도 자유롭다. "이거 왜 쓰냐" 같은 질문 안 받는다. 신경 안 쓴다는 뜻이다. 출퇴근도 유연하다. 10시에 와도 누가 뭐라 안 한다. 일만 하면 된다. 근데 이게 전부 내 책임이다. 팀원이 9시에 안 오면? 나한테 연락 온다. 일정이 밀리면? 나한테 물어본다. 장애 나면? 나한테 전화 온다. 새벽 3시에도.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의사결정의 무게 지난달. 레거시 시스템 전면 개편 건이 올라왔다. 2개월 프로젝트. 팀원 전체 투입. 다른 기능 개발은 전부 멈춰야 한다. 부장이 물었다. "가능하냐?" "...검토해보겠습니다." 주말 내내 생각했다. 2개월로는 빡빡하다. 3개월은 필요하다. 근데 일정을 늘리면? 다른 팀 일정도 다 밀린다. 팀원들한테 물어봤다. "형이 판단하면 따르겠습니다." 4년차가 말했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2년차가 말했다. 결국 내가 결정했다. 2개월 반으로 가자고. 주말 근무 없이. 지금? 프로젝트 진행 중이다. 일정은 딱 맞춰가고 있다. 근데 매일 불안하다. 내가 잘못 판단한 건 아닐까.인정받지 못하는 리더십 작년 연말 평가. "올해 팀 성과가 좋았어요. 수고했습니다." 부장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리더십을 좀 더 발휘하면 좋겠어요." "...네?" "팀을 이끄는 모습을 보여줘야죠." 웃겼다. 내가 1년 내내 뭘 한 건데. 일정 관리. 업무 분배. 멘토링. 다른 팀 조율. 장애 대응. 기술 부채 관리. 근데 "리더십을 발휘하라"고? 이유는 알았다. 부장 눈에는 안 보인다. 내가 하는 일의 90%가. 그가 보는 건 회의 시간뿐이다. 그 시간에 나는 말이 적다. 기술 이야기는 부장이 이해 못 하니까. 결국 평가는 B였다. 연봉 인상률 3%. 그날 퇴근길. 편의점에서 맥주 3캔 샀다. 집에서 혼자 마셨다. 누가 나를 평가하나 제일 이상한 건 이거다. 내 업무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 부장은? 개발 모른다. 동료들은? 내가 평가한다. 다른 팀은? 결과물만 본다. 그럼 내가 잘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까? 모른다. 정말로. 피드백이 없다. 좋다는 말도, 나쁘다는 말도. 그냥 일이 돌아가면 잘하는 거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팀이 제대로 안 돌아갈 거다. 확신한다. 근데 회사는 알까? 모를 거다. 바로는. 3개월쯤 지나서 알겠지. "아 그때 그 사람이 이런 걸 했구나." 그때는 이미 늦었다. 책임과 권한의 불균형 정리하면 이렇다. 나는 팀을 이끈다. 하지만 팀장이 아니다. 결정을 한다. 하지만 최종 권한은 없다. 책임을 진다. 하지만 보상은 적다. 이게 말이 되나? 안 된다. 근데 현실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회사가 편하니까. 팀장 뽑으면 월급 더 줘야 한다. 내 월급은 그대로 두고 일만 시키면? 이득이다. 나는 왜 받아들일까? 귀찮아서. 이직하려면 이력서 쓰고 면접 보고 새 회사 적응하고.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그리고 솔직히. 지금 팀이 싫지는 않다. 팀원들 괜찮다. 일도 재밌다. 가끔은. 대안은 있을까 가끔 상상한다. 제대로 된 팀장이 있다면? 내 업무의 반은 줄어들 거다. 일정 관리. 대외 커뮤니케이션. 인사 문제. 전부 팀장이 할 일이다. 나는? 코드만 쓰면 된다. 아키텍처만 고민하면 된다. 기술만 파면 된다. 꿈 같은 이야기다. 현실은? 바뀔 가능성이 없다. 회사가 변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럼 내가 바뀌어야 하나? 이직해야 하나? 모르겠다. 솔직히. 끝나지 않는 고민 오늘도 슬랙 메시지가 온다. "이 기능 언제까지 가능할까요?" "확인하고 알려드릴게요." 똑같은 답. 매번. 모니터를 본다. 펜을 돌린다. 생각한다. 이게 정답인가? 이대로 계속 가야 하나? 답은 없다. 아직은. 커피를 마신다. 세 번째 아아. 일을 한다. 그게 내 일이니까.매니저 없는 팀의 사실상 리더. 책임은 무겁고, 인정은 적고, 권한은 없다. 그래도 오늘 출근했다.

커피 3잔으로 버티는 하루의 진실

커피 3잔으로 버티는 하루의 진실

커피 3잔으로 버티는 하루의 진실 9시 15분, 첫 번째 아아 지각이다. 14분 59초 지각. 엘리베이터에서 핸드폰으로 슬랙 확인. 긴급한 멘션은 없다. 다행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가방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꺼낸다. 편의점에서 2200원짜리. 컵 표면에 물방울이 맺혀있다. 첫 모금을 마신다. 차갑다. 쓰다. 정신이 든다. 모니터를 켠다. 어제 못 끝낸 PR이 3개다. 신입 후배가 올린 코드에 빨간 줄이 보인다. 리뷰를 써야 한다. 근데 아직 머리가 안 돌아간다.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신다. 슬랙에 PM이 메시지를 보냈다. "개발님, 이거 오늘 배포 가능할까요?" 배포 일정표를 확인한다. 오늘은 배포일이 아니다. "확인해보겠습니다"라고 답장한다. 확인할 건 없다. 그냥 시간 버는 답장이다. 커피가 반쯤 줄었다. 손이 차갑다. 키보드를 친다. 손가락이 뻣뻣하다. 아직 몸이 안 깼다.10시쯤 되면 정상이다. 커피 한 잔이 완전히 흡수되는 시간. 그때부터 코드가 읽힌다. 변수명이 눈에 들어온다. 로직이 이해된다. 오전엔 집중이 된다. 아무도 말 안 건다. 회의도 없다. PR 리뷰를 3개 끝낸다. "LGTM" 도장을 찍는다. 신입 후배 코드는 컨벤션이 안 맞아서 코멘트를 7개 단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첫 번째 커피는 생존용이다. 이게 없으면 오전이 지옥이다. 1시 30분, 두 번째 아아 점심을 먹었다. 김치찌개였다. 항상 김치찌개다. 사장님이 "오늘은 김치가 잘 익었어요"라고 했다. 맛있었다. 근데 배가 부르다. 자리로 돌아온다. 졸음이 온다. 밥 먹고 30분이 가장 위험하다. 모니터만 보면 눈이 감긴다. 코드가 흐려진다. 카페에 간다. 회사 1층 카페. 직원 할인으로 3500원. 아이스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 얼음을 가득 채워달라고 한다. 카드를 찍는다. 이번 달 커피값이 얼마나 나올까. 생각하기 싫다.자리에 앉는다. 빨대로 첫 모금. 진하다. 오전보다 진하게 뽑았다. 좋다. 슬랙 알림이 5개다. 다 읽는다. 긴급한 건 없다. 그냥 떠드는 거다. 읽씹한다. 오후 회의가 1시간 후다. 그 전에 이슈 하나를 끝내야 한다. API 응답 속도 개선. 쿼리를 봤는데 N+1이 있다. 수정한다. 테스트를 돌린다. 통과한다. PR을 올린다. 커피를 마신다. 반쯤 남았다. 얼음이 녹아서 연해진다. 그래도 마신다. 안 마시면 회의 중에 잔다. 두 번째 커피는 점심 폭탄 해체용이다. 이게 없으면 오후 2시에 죽는다. 3시 10분, 세 번째 핫아 회의가 끝났다. 2시간 걸렸다. 예상은 1시간이었다. 항상 그렇다. 기획자가 "이건 간단하게 추가할 수 있죠?"라고 물었다. 대답은 "확인해보겠습니다"였다. 간단한 게 없다는 걸 다들 안다. 그래도 묻는다. 피곤하다. 어깨가 무겁다. 눈이 뻑뻑하다. 모니터를 너무 오래 봤다. 카페에 또 간다. 이번엔 핫 아메리카노. 3500원. 같은 가격이다. 근데 핫은 양이 더 많다. 이득이다. 들고 온다. 김이 난다. 한 모금 마신다. 뜨겁다. 혓바닥이 데인다. 그래도 마신다. 입안이 따뜻하다.오후 3시부터 6시까지가 고비다. 가장 졸리고 가장 집중이 안 된다. 근데 일은 가장 많이 들어온다. PM이 "내일까지 되나요?" 하고 묻는다. 기획자가 "급한 건데요" 하고 메시지를 보낸다. 다 급하다. 항상 급하다. 핫아를 마신다. 천천히 마신다. 뜨거워서 빨리 못 마신다. 그게 좋다. 시간이 천천히 간다. 코드를 본다. 레거시다. 주석도 없다. 작성자는 퇴사했다. 이해해야 한다. 수정해야 한다. 한숨이 나온다. 커피를 마신다. 세 번째 커피는 생존 연장용이다. 이게 없으면 오후 4시에 멘탈이 나간다. 6시 17분, 빈 컵 세 개 퇴근 시간이다. 책상 위에 빈 컵이 세 개다. 편의점 플라스틱 컵 하나. 카페 컵 두 개. 다 비었다. 얼음만 남았다. 키보드를 덮는다. 모니터를 끈다. 가방을 챙긴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허리가 뻐근하다. 하루 종일 앉아있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동료가 "오늘 3잔 드셨네요"라고 한다. 책상에 컵 세 개를 봤나 보다. "네"라고 답한다. "매일 3잔이세요?"라고 묻는다. "네"라고 또 답한다. 집에 간다. 지하철에 앉는다. 핸드폰을 본다. 유튜브를 켠다. 아무거나 본다. 내용은 안 들어온다. 그냥 화면만 본다. 손이 떨린다. 미세하게. 카페인 과다다. 알고 있다. 근데 어쩔 수 없다. 커피 없이는 못 버틴다. 반성 같은 건 없다 커피 없이 일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안 된다. 머리가 안 돌아간다. 코드가 안 읽힌다. 회의 중에 졸음이 쏟아진다. 그럼 줄일 수 있을까. 2잔으로. 생각해봤다. 안 된다. 오전에 한 잔 안 마시면 10시까지 좀비다. 점심 후에 안 마시면 오후 2시에 기절한다. 오후 3시에 안 마시면 퇴근까지 버티지 못한다. 3잔이 적정선이다. 더 마시면 손 떨림이 심해진다. 덜 마시면 일을 못한다. 7년 동안 최적화한 결과다. 건강에 안 좋다는 건 안다. 위장도 안 좋고 수면도 안 좋다. 근데 당장 내일 PR 리뷰를 해야 하고 배포를 해야 한다. 건강은 나중 문제다. 지금은 생존이 먼저다. 동기가 "카페인 끊었다"고 자랑했다. 대단하다고 했다. 진심이었다. 근데 나는 못한다. 안 할 거다. 커피가 내 연료다. 퇴근하고 집에 왔다. 냉장고를 연다. 맥주가 있다. 마실까 말까. 고민한다. 오늘 카페인을 너무 많이 섭취했다. 잠이 안 올 것 같다. 맥주를 마신다. 술로 카페인을 중화시킨다. 건강한 방법은 아니다. 알고 있다. 내일도 아아-아아-핫아다. 모레도 그럴 거다. 다음 주도 마찬가지다. 이게 내 루틴이다. 바꿀 생각은 없다. 바꿀 수도 없다. 커피 3잔으로 버티는 하루. 이게 내 진실이다.내일도 편의점 들러서 아아 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