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3잔으로 버티는 하루의 진실
- 25 Dec, 2025
커피 3잔으로 버티는 하루의 진실
9시 15분, 첫 번째 아아
지각이다. 14분 59초 지각.
엘리베이터에서 핸드폰으로 슬랙 확인. 긴급한 멘션은 없다. 다행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가방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꺼낸다. 편의점에서 2200원짜리. 컵 표면에 물방울이 맺혀있다.
첫 모금을 마신다. 차갑다. 쓰다. 정신이 든다.
모니터를 켠다. 어제 못 끝낸 PR이 3개다. 신입 후배가 올린 코드에 빨간 줄이 보인다. 리뷰를 써야 한다. 근데 아직 머리가 안 돌아간다.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신다.
슬랙에 PM이 메시지를 보냈다. “개발님, 이거 오늘 배포 가능할까요?” 배포 일정표를 확인한다. 오늘은 배포일이 아니다. “확인해보겠습니다”라고 답장한다. 확인할 건 없다. 그냥 시간 버는 답장이다.
커피가 반쯤 줄었다. 손이 차갑다. 키보드를 친다. 손가락이 뻣뻣하다. 아직 몸이 안 깼다.

10시쯤 되면 정상이다. 커피 한 잔이 완전히 흡수되는 시간. 그때부터 코드가 읽힌다. 변수명이 눈에 들어온다. 로직이 이해된다.
오전엔 집중이 된다. 아무도 말 안 건다. 회의도 없다. PR 리뷰를 3개 끝낸다. “LGTM” 도장을 찍는다. 신입 후배 코드는 컨벤션이 안 맞아서 코멘트를 7개 단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첫 번째 커피는 생존용이다. 이게 없으면 오전이 지옥이다.
1시 30분, 두 번째 아아
점심을 먹었다. 김치찌개였다. 항상 김치찌개다. 사장님이 “오늘은 김치가 잘 익었어요”라고 했다. 맛있었다. 근데 배가 부르다.
자리로 돌아온다. 졸음이 온다. 밥 먹고 30분이 가장 위험하다. 모니터만 보면 눈이 감긴다. 코드가 흐려진다.
카페에 간다. 회사 1층 카페. 직원 할인으로 3500원. 아이스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 얼음을 가득 채워달라고 한다. 카드를 찍는다. 이번 달 커피값이 얼마나 나올까. 생각하기 싫다.

자리에 앉는다. 빨대로 첫 모금. 진하다. 오전보다 진하게 뽑았다. 좋다.
슬랙 알림이 5개다. 다 읽는다. 긴급한 건 없다. 그냥 떠드는 거다. 읽씹한다.
오후 회의가 1시간 후다. 그 전에 이슈 하나를 끝내야 한다. API 응답 속도 개선. 쿼리를 봤는데 N+1이 있다. 수정한다. 테스트를 돌린다. 통과한다. PR을 올린다.
커피를 마신다. 반쯤 남았다. 얼음이 녹아서 연해진다. 그래도 마신다. 안 마시면 회의 중에 잔다.
두 번째 커피는 점심 폭탄 해체용이다. 이게 없으면 오후 2시에 죽는다.
3시 10분, 세 번째 핫아
회의가 끝났다. 2시간 걸렸다. 예상은 1시간이었다. 항상 그렇다. 기획자가 “이건 간단하게 추가할 수 있죠?”라고 물었다. 대답은 “확인해보겠습니다”였다. 간단한 게 없다는 걸 다들 안다. 그래도 묻는다.
피곤하다. 어깨가 무겁다. 눈이 뻑뻑하다. 모니터를 너무 오래 봤다.
카페에 또 간다. 이번엔 핫 아메리카노. 3500원. 같은 가격이다. 근데 핫은 양이 더 많다. 이득이다.
들고 온다. 김이 난다. 한 모금 마신다. 뜨겁다. 혓바닥이 데인다. 그래도 마신다. 입안이 따뜻하다.

오후 3시부터 6시까지가 고비다. 가장 졸리고 가장 집중이 안 된다. 근데 일은 가장 많이 들어온다. PM이 “내일까지 되나요?” 하고 묻는다. 기획자가 “급한 건데요” 하고 메시지를 보낸다. 다 급하다. 항상 급하다.
핫아를 마신다. 천천히 마신다. 뜨거워서 빨리 못 마신다. 그게 좋다. 시간이 천천히 간다.
코드를 본다. 레거시다. 주석도 없다. 작성자는 퇴사했다. 이해해야 한다. 수정해야 한다. 한숨이 나온다. 커피를 마신다.
세 번째 커피는 생존 연장용이다. 이게 없으면 오후 4시에 멘탈이 나간다.
6시 17분, 빈 컵 세 개
퇴근 시간이다. 책상 위에 빈 컵이 세 개다. 편의점 플라스틱 컵 하나. 카페 컵 두 개. 다 비었다. 얼음만 남았다.
키보드를 덮는다. 모니터를 끈다. 가방을 챙긴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허리가 뻐근하다. 하루 종일 앉아있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동료가 “오늘 3잔 드셨네요”라고 한다. 책상에 컵 세 개를 봤나 보다. “네”라고 답한다. “매일 3잔이세요?”라고 묻는다. “네”라고 또 답한다.
집에 간다. 지하철에 앉는다. 핸드폰을 본다. 유튜브를 켠다. 아무거나 본다. 내용은 안 들어온다. 그냥 화면만 본다.
손이 떨린다. 미세하게. 카페인 과다다. 알고 있다. 근데 어쩔 수 없다. 커피 없이는 못 버틴다.
반성 같은 건 없다
커피 없이 일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안 된다. 머리가 안 돌아간다. 코드가 안 읽힌다. 회의 중에 졸음이 쏟아진다.
그럼 줄일 수 있을까. 2잔으로. 생각해봤다. 안 된다. 오전에 한 잔 안 마시면 10시까지 좀비다. 점심 후에 안 마시면 오후 2시에 기절한다. 오후 3시에 안 마시면 퇴근까지 버티지 못한다.
3잔이 적정선이다. 더 마시면 손 떨림이 심해진다. 덜 마시면 일을 못한다. 7년 동안 최적화한 결과다.
건강에 안 좋다는 건 안다. 위장도 안 좋고 수면도 안 좋다. 근데 당장 내일 PR 리뷰를 해야 하고 배포를 해야 한다. 건강은 나중 문제다. 지금은 생존이 먼저다.
동기가 “카페인 끊었다”고 자랑했다. 대단하다고 했다. 진심이었다. 근데 나는 못한다. 안 할 거다. 커피가 내 연료다.
퇴근하고 집에 왔다. 냉장고를 연다. 맥주가 있다. 마실까 말까. 고민한다. 오늘 카페인을 너무 많이 섭취했다. 잠이 안 올 것 같다. 맥주를 마신다. 술로 카페인을 중화시킨다. 건강한 방법은 아니다. 알고 있다.
내일도 아아-아아-핫아다. 모레도 그럴 거다. 다음 주도 마찬가지다. 이게 내 루틴이다. 바꿀 생각은 없다. 바꿀 수도 없다.
커피 3잔으로 버티는 하루. 이게 내 진실이다.
내일도 편의점 들러서 아아 사 가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