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2년차, 아내와의 개발자 부부 생활

결혼 2년차, 아내와의 개발자 부부 생활

결혼 2년차, 아내와의 개발자 부부 생활 그렇게 야근은 만난다 퇴근 시간이 따로 없다는 건 뭐 하는 말인가. 회사에 나가기 전부터 이미 결정되어 있다. 아내 이수진은 UI 디자이너고, 나 김개발은 백엔드 개발자다. 둘 다 IT 회사. 둘 다 서로 다른 회사. 그런데 오늘따라 야근 문화는 똑같다. 결혼 2년 차가 되니까 알게 된 게 있다. 지인들한테 "아, 개발자랑 디자이너 부부 축하해요"라고 들을 때 정말 감동했는데, 3개월 정도 지나니까 '아, 이게 축하할 일만은 아니구나' 싶었다.월요일 오전 10시. "어제 몇 시까지 있었어?" 하는 인사말로 날이 시작된다. 나는 배포 건으로 10시까지 있었다고 했고, 아내는 "어? 나 11시까진 있었는데?"라고 대답한다. 이게 우리의 일상 인사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한 사람이 퇴근할 때쯤이면 다른 한 사람이 야근 전화를 받는다. 처음 이 생활이 반복되고 1년이 지났을 때, 나는 정말 미칠 뻔했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집에 와서도 쉬지 못하는 거다. 아내도 디자인 피드백으로 예민하고 있고, 나도 레거시 코드 때문에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다. 저녁 8시, 집에는 침묵만 흐른다. 각자 슬랙을 본다. 각자 메일을 확인한다. "밥 먹었어?" "응, 너도?" 이런 식의 대화가 하루의 전부다. 라면 냄새가 나는 밤 아내가 야근이 예정되어 있다고 했던 어느 날. 나는 혼자 집에 남았다. 회사 근처 김치찌개집에서 퇴근한 지 1시간이 안 되는데, 벌써 배가 고팠다. 이쯤 되면 밥을 먹으러 나가는 게 아니라 시간을 보내러 나가는 건 같다. 일단 냉장고를 열었다. 계란 두 개, 파 한 단, 라면 3개. 그리고 나머지는 아내가 아직 손도 못 댄 반찬들. 아내가 주말에 만들어두는 반찬은 나를 위한 배려인데, 정작 함께 먹을 시간이 없어서 냉장고에 처박혀만 있다. 라면을 끓으면서 계란을 풀고 파를 썬다. 냄비에서 치직거리는 소리, 몬순이 올라오는 소리. 이게 내 저녁이다. 맛있는 요리도, 함께할 누군가도 없이 그냥 배를 채우기 위한 밤의 의식.그런데 신기한 거, 아내가 집에 와서 그 라면을 마주칠 때마다 웃는다. "또 라면이야?" 라고 묻지만 웃고 있다. 내가 "그래, 또 라면이야"라고 대답해도 웃는다. 이 웃음이 뭔지 알게 된 건 이제다. 고독하지만, 그 고독 속에서도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다는 그 감정이다. 내가 먼저 집에 있을 때는 좀 다르다. 나는 집에 와서 TV를 켜고 누워 있다. 넷플릭스 화면이 보조 모니터처럼 변해버린 지는 언제였을까. 퇴근해서 이것도, 퇴근해서 저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시간은 자꾸 흘러간다. 그럼 아내가 들어온다. "밥 먹었어?" "냉장고 밥 있잖아." "아, 반찬도 남아있고..."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도, 아내는 나를 휙 지나간다. 자기 가방을 던지고, 신발을 벗고, 휴대폰을 본다. 업무 슬랙이 얼마나 쌓였나. 요청 건은 몇 개나 들어왔나. 내일 아침 회의 준비는 되어 있나.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나는 덜 외로워진다. 서로 알기 때문에 나약해질 수 있다 일반인 부부들이 부러워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개발자랑 디자이너라니, 쟤들은 서로의 일을 이해할 수 있겠네"라는 둥, "일이 많으면 서로 도와줄 수 있고 좋겠다"는 둥 말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아내가 야근하는 날, 나는 그 이유를 안다. 클라이언트가 갑자기 UI를 바꿔달고 했거나, 디자인 시스템 문서를 다시 정리해야 했거나, 개발팀과의 협의가 자꾸 꼬인 거거나. 나는 이런 상황들을 정확히 안다. 내 직업에서도 매일 일어나니까. "어? 나도 이런 일을 당하잖아" 이렇게 생각하면서 아내에게 공감을 건넨다. 그냥 말로만 하는 공감이 아니다. 피부로 느끼는 공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공감이 때로는 둘 다를 나약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거 봐, 기획자가 또 마지막 날에 요구사항을 바꿨어." "어? 우리 PM도 그랬거든. 완성했다고 생각했는데 '아, 그런데 이것도 해야겠는데?'라고." 이런 식으로 불만을 나누다 보면, 그게 위로가 되는 동시에 서로의 스트레스를 증폭시킨다. 공감이 공명이 되는 거다. 우리 둘 다 최악의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는 확인이 오히려 답답함을 키운다. 그럼 이건 뭐할까? 쿠션처럼 작동해야 할 배우자가 같은 난로에 있는 불장난이 되어버리는 거다.그런데 웃긴 일이 생겼다. 2년 차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어떤 방식을 터득했다. "야, 오늘 하루는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자." 이 말이 나올 때마다 우리는 웃는다. 웃고 있지만 진지하다. 업무 얘기는 하지 말고, 서로가 일으킨 스트레스에 대해 공명하지 말고, 그냥 침묵 속에서 함께 있자는 뜻이다. 그리고 가끔, 정말 가끔 아내가 나를 본다. "개발자 공부하는 거 봤어. 좋아 보이더라." 이렇게 나의 사이드 프로젝트를 먼저 챙기거나, 나도 그렇게 한다. "그 디자인 포트폴리오 사이트, 예뻤어." 이런 식으로 서로의 작은 노력을 본다. 누군가는 이걸 당연하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둘 다 출장지에서 야근하는 생활을 하는 입장에선, 상대방의 사이드 프로젝트를 봐줄 여유가 생긴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결국은 옆에 있다는 것 나는 솔직하게 말할 거다. 개발자 부부 생활이 로맨틱한 건 아니다. 집에 와서도 각자의 모니터를 본다. 침실에서 자기 전까지도 휴대폰 화면을 본다. 주말에는 늦잠을 자지만, 평일에는 서로 다른 시간에 출근하고 다른 시간에 퇴근한다. 만약 모두가 9시 출근 6시 퇴근이라면, 주말에 함께할 시간도 많겠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그렇지만 남은 것이 있다. 라면을 끓을 때, 아내가 온다는 걸 알고 있어서, 나는 두 그릇을 준비한다. 한 그릇은 내 것이고, 한 그릇은 그 언젠가 아내가 늦게 와서 먹을 것이다. 그러다가 아내가 집에 일찍 온 날이면, 그 라면이 두 사람이 먹는 대신 냉장고에 들어간다. 그것도 좋다. 왜냐하면 아내가 이제 있을 거니까. 기획자가 또 마지막 날에 요구사항을 바꾸면, 나는 한숨을 쉰다. 그리고 아내가 같은 한숨을 쉬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럼 우리는 침묵한다. 말이 필요 없다. 그 침묵 속에서도 '난 너를 알아'라는 신호가 오간다. 주말에 치킨을 시킬 때, 나는 한 마리를 시키지 않는다. 아내가 조각을 집어갈 걸 알고 있으니까. 아내는 "야, 너 혼자 다 먹어도 돼"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그 말은 표면의 말일 뿐이다. 이게 개발자 부부 생활의 핵심이다. 일이 많고, 야근이 많고, 때론 침묵이 집을 채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는 건, 상대방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그래도 옆에 있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출장 가는 날, 아내에게 슬랙을 보낸다. "야, 밥은 먹어?" 아내도 답한다. "응, 너도 뭐 좀 먹고 자." 이 메시지는 8글자도 안 되지만, 이건 '난 네가 어디에 있든 너를 생각하고 있어'라는 뜻이다. 우리의 사랑의 언어는 업무 얘기가 아니라, 끼니를 챙기는 것이다. 개발자 부부 생활? 별로 로맨틱하지 않다. 하지만 누구보다 솔직하고, 누구보다 따뜻하다. 우리는 밤 11시에 집에 도착해서, 난로 옆에 앉은 것처럼 서로를 데운다. 전자기기의 불빛 속에서 말이다. 그리고 내일도 또 다시, 각자의 야근 문화는 만난다. 결국 가장 좋은 건, 누가 먼저 오든 라면을 함께 끓일 수 있다는 거 아닐까.

아내가 야근하는 밤, 혼자 라면을 끓이며 생각한 것

아내가 야근하는 밤, 혼자 라면을 끓이며 생각한 것

아내가 야근하는 밤, 혼자 라면을 끓이며 생각한 것 저녁 8시 47분. 슬랙 메시지가 울렸다. 아내였다. "디자인 수정 요청 또 들어왔어. 늦을 것 같아 :(" 아. 또 그 시간이구나. 휴. 나는 모니터를 꺼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회사 근처 편의점 가면서 휴대폰으로 "밥 뭐 먹을까" 검색해봤는데, 깊은 밤에 나 혼자 밥을 챙겨먹는다는 게 좀 이상했다. 미안한 마음도 들었고. 그냥 라면 사 왔다. 신라면과 진라면 중에 고민하다가 신라면으로. 아내는 매운 거 잘 못 먹으니까, 이건 순전히 내 선택이다.혼자가 된 주방의 감정 기복 집에 돌아와서 냄비에 물을 부었다. 가스불을 켰다. 이 순간이 가장 낯설다. 보통 우리는 함께 집에 들어온다. 아내가 "오늘 뭐 먹을까?" 하고, 나는 "뭐든 좋아" 하고, 그러면 아내가 "좀 구체적으로 말해" 한다. 그 루프. 근데 오늘은 그 대화가 없다. 물이 끓으면서 김이 피어오르는데, 혼자 서 있는 주방이 유독 크게 느껴진다. 냄비 옆에 아내의 멀티탭 정리기 같은 거 보이고, 냉장고 문에 붙은 우리 둘이 찍은 사진 보인다. 여행 가서 찍은 거였나. 1년 전? 2년 전? 기억이 안 난다. 라면을 끓이면서 생각한 것들: "밥을 해야 하나?" - 라면만 먹어도 괜찮지 않나? 밥까지 하면 너무 번거롭지 않나? 근데 밥 없이 라면만 먹는 게 좀 이상하지 않나? 아내 귀가했을 때 "저 혼자 라면만 먹었어" 라고 말하면 뭐라고 할까? "야근이 많은 아내가 나한테서 뭘 기대하나?" - 내가 밥을 해놓고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근데 오늘 배포일이었잖아. 코드 리뷰도 많았고. 내가 야근하는 날은 아내가 라면을 끓이는데, 그럼 아내가 야근하는 날은... 나도 뭔가를 챙겨야 하는 건 아닐까? "우리가 이렇게 살기로 한 건가?" - 신혼집에 와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집을 좀 챙겨야 하지 않나?" 였는데, 난 여전히 회사만 챙기고 있다. 아내의 야근이 길어질수록, 내가 라면을 끓일 때마다 이 질문이 자꾸 떠오른다.슬로우 라이프는 꿈이고, 우린 패스트푸드의 주인 라면이 끓는 동안 나는 생각했다. 요즘 유튜브에 자주 떠오는 영상들 말이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일상" 이런 거. 영상 속 주인공은 보통 시골에 작은 집을 짓고, 정성스럽게 밥을 짓고, 밤에는 촛불 아래 책을 읽는다. 가끔 그런 삶에 끌려본다. 심지어 댓글도 "이런 삶을 살고 싶어요" 로 가득 찬다. 근데 현실은 어떤가. 난 7년 차 백엔드 개발자고, 아내는 UI 디자이너다. 우린 서울에 작은 전세를 얻고 살고 있다. 그 전세금도 부모님 도움으로 겨우 마련했다. 정성스러운 밥은커녕, 우리 저녁의 대부분은 "이거 간단하게 먹을까?" 로 시작된다. 화요일 점심? 회사 근처 김치찌개집. 목요일? 배달음식. 금요일? "아 오늘은 치킨 시킬까" 가 뭔가 특별한 일처럼 느껴진다. 주말 아침? 늦잠 자고 두 시간 뒤에 치킨. 이게 우리의 삶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싫다고 느껴지면서도 바꿀 에너지가 없다는 거다. 후배 PR 리뷰하고, 슬랙 알림에 정신없고, 주말에도 "혹시 모르니까" 노트북을 켜둔다. 아내는? 밤 11시에 "마진 수정이 또 나왔대" 하고, 자정이 넘어서 "이제 끝났어" 한다. 우린 정성스러운 밥을 지을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라면이다. 라면은 8분이면 된다. 신라면이 끓는 동안 나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 이런 생각들. 밥 대신 라면을 선택하는 순간, 그게 책임감인가 미안함인가 물론 나도 안다. 아내가 들어왔을 때 밥이 있으면 좋겠다는 걸. 따뜻한 국과 반찬이 있으면, 아내가 "오, 고마워" 하면서 얼굴이 부드러워질 거 같다. 근데... "근데"가 문제다. 회사에서 배포일이었다. 배포일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이다. 8시에 끝날 줄 알았는데 9시까지 간다. 이틀 전부터 "내일 배포 있으니까 좀 일찍 집에 갈게" 라고 말해놓고도, 정작 배포날 오전 9시에 "어? 이게 왜 이래?" 하면서 시작된다. 그 와중에 아내는 밥 준비할 생각을 해야 하나? 아니다. 그 정도의 여유는 없다. 그래서 라면이 합리적인 선택지가 된다. 아내가 야근하는 걸 어쩔 수 없으니까, 나도 자기 밥이라도 챙기자는 마음으로. 근데 이게 정말 책임감일까? 아니면 그냥 무책임함의 다른 표현일까? 가끔 생각해본다. "밥을 해야 하나?" 라는 질문은 사실 "내가 가정에 대해 뭘 해야 하나?" 라는 더 큰 질문의 축소판인 거 같다. 밥 하나 못 하면서 무슨 남편이냐고 생각할 때도 있다. 근데 또 다시 생각해보면, 난 지금 이 순간도 피곤하다. 일도 많고, 머리도 복잡하고, 뭔가를 결정할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다.결국 우린 서로에게 미안해하는 사람들이다 밤 11시 32분. 아내가 집에 들어왔다. "오..." 하면서 신발을 벗었다. 피곤한 목소리였다. "라면 먹었어?" 라고 물었다. "응. 너는?" 이라고 대답했다. 아내는 "회사에서 라면 먹었어" 라고 했다. 둘 다 라면이었다. 그 순간, 정말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미안했다. 왜?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아내가 회사에서 라면을 먹으면서까지 일을 했을 거고, 나도 집에서 라면을 먹으면서 자기 자신을 챙겼고 (라고 생각했고), 우리 둘 다 피곤해서 아무것도 제대로 챙길 수 없었다는 게 미안했던 것 같다. "내일 좀 일찍 들어올 수 있어?" 라고 아내가 물었다. 내일도 배포가 있나? 아. 없긴 한데, 후배 오인턴이 새로운 모듈을 올렸고, 코드 리뷰를 해야 한다. "아마도?" 라고 대답했다. 아내는 웃었다. "뭐 하나 제대로 안 되네" 라고. 그건 우리 둘 다를 비난하는 게 아니었다. 우린 이런 사람들이니까. 계획해도 안 되는 사람들. 라면 끓일 때마다 "밥도 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사람들. 내가 "밥 먹을래?" 라고 물었다. 아내는 "그냥 좀 누워있고 싶어" 라고 했다. 나도 알겠다. 그 피곤함. 밥을 해야 하는데, 밥을 하려면 장을 봐야 하고, 준비를 해야 하고, 씻어야 하고... 그 모든 과정이 산처럼 느껴지는 그 피곤함. 라면 한 그릇의 철학 결국 이거다. 우리는 라면 끓이는 수준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다. 8분이면 된다.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 물 끓이고, 면 넣고, 스프 넣고, 계란 삶은 거 넣고, 파 올리고, 먹는다. 그게 끝이다. 반대로 밥은 복잡하다. 밥을 준비하려면 마음가짐부터 다르다. "오늘 뭘 할까" "반찬은 뭐로 할까" "누가 먹을까" 이런 식으로. 밥은 누군가를 생각하는 음식이다. 라면은 나를 생각하는 음식이다. 근데 결혼했으니까, 밥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난 계속 이 질문의 루프에 빠진다. 매번 아내가 야근하는 밤, 라면을 끓이면서. "좀 더 성숙해져야 하나?" 라는 생각도 든다. 다른 남편들은 어떻게 할까? 아내가 야근하는 밤, 밥을 해두고 반찬까지 챙기고 있을까? 난 못하는 게 당연한가? 아니면 나만 못하는 걸까? 혼자가 아니라는 확인 그런데 아내가 "고마워" 라고 했다. 왜 감사의 말을 했을까? 나는 뭘 한 거도 아닌데. 그냥 라면을 끓였을 뿐인데. "뭐가?" 라고 물었다. 아내는 "뭐든. 혼자가 아니라서. 함께 있어서" 라고 했다. 아. 그게 그 말이었구나. 우리는 둘 다 바쁘다. 우리는 둘 다 피곤하다. 우린 둘 다 밥을 챙길 여유가 없다. 그래서 둘 다 라면을 먹는다. 회사에서 하나, 집에서 하나. 하지만 적어도 우린 같은 시간대에, 같은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만으로도, 혼자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는 거였다. 밥을 해야 한다는 미안함과 라면을 끓여야 한다는 현실 사이에서, 우린 그렇게 함께하고 있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옆에 있다는 것. 그 밤, 나는 라면 국물을 마시면서 생각했다. "내일은 밥을 해야겠다" 고. 하지만 그 생각도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알고 있었다. 내일도 무언가는 일어날 거고, 내일도 우린 바쁠 거고, 내일도 라면을 끓일 수도 있다는 걸. 그래도 괜찮을 거라는 걸. 왜냐하면, 우린 함께니까.결국 밥인지 라면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옆에 있다는 것 하나면 충분했다.

주말 치킨 배달이 유일한 낙인 남자

주말 치킨 배달이 유일한 낙인 남자

주말의 유일한 낙, 치킨 배달이 오는 그 순간 금요일 퇴근 시간, 나는 벌써 내일 주말 계획을 생각한다. 아니, 계획이라고 하기도 뭐한데, 그냥 루틴이다. 정해진 루틴. 마치 프로덕션 배포 절차처럼 변하지 않는, 그리고 변할 수 없는 루틴 말이다. 회사에서 나오면서 슬랙은 무음으로 돌린다. 월요일 아침까지는 거의 안 봐도 된다는 걸 이제 알았다. 진짜 급한 일이면 전화를 하겠지.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다. 아무튼 그렇게 자유로워진다. 금요일 저녁, 차를 몰고 집으로 향하면서 나는 이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아내다. 아니다. 아내가 아니다. 아내는 주말도 일이 많다. UI 디자이너라는 게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업계가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토요일 오후쯤이면 출근한다. "기획이 밀렸어"라는 메시지와 함께. 나는 이미 여러 번 봤다. "금요일에 더 할 수 있었잖아"라고 말하고 싶지만, 남편으로서의 기본 소양이 아직 남아있어서 그냥 "알았어, 늦지 말고 와"라고 답한다. 얄미운 건, 내가 그렇게 말하면 정말 늦다는 것이다. 그럼 나는?토요일 아침 10시. 늦잠이 내 주말의 시작이다. 평일에는 7시에 일어난다. 아내도 7시 30분쯤 일어난다. 양치질하고 세안하고 옷 입고 정신없이 집을 나간다. 하지만 토요일은 다르다. 토요일 아침 7시 알람을 설정해놨지만 나는 멍을 때린다. "한 시간 더"라고 생각한다. 그 "한 시간 더"가 얼마나 행복한가. 알람이 또 울린다. 8시 30분. 이제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여전히 침대에서 나갈 이유가 없다. 핸드폰을 집어 들고 회사 단톡방을 본다. 아, 어제 배포한 버그에 대한 메시지가 5개 있다. "나중에 본다"라고 중얼거리고 다시 눈을 감는다. 그렇게 또 한 시간이 지난다. 10시. 정신을 차린다. 아내는 벌써 나갔다. 샤워실에서 나오면서 "점심까지만 와, 저녁은 늦을 것 같아"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차피 내 계획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일어나서 화장실 가고, 세수하고, 냉장고를 연다. 지난주에 샀던 두유, 계란, 상한 것 같은 김치. 밥? 없다. 빵? 없다. 그럼 뭐 먹지? 아, 치킨이다.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벌써 배달 앱을 든다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배달 앱을 킨다. 10시 35분. 한 시간쯤 있으면 배달받을 수 있는 시간이다. 나는 이미 이 시간들을 백분율로 계산한다. 조리 시간 20분, 배달 시간 15분, 기다리는 시간의 여유 20분. 11시 25분쯤이면 초인종이 울린다. 화면을 넘긴다. 어제 먹던 그 닭다리 세트? 아니면 오늘은 순살? 두 가지를 섞어주는 혼합 세트도 있다. 나는 항상 같은 것을 본다. 그 가게. 별점 4.8. 리뷰 7천 개. "역시 여기지"라고 중얼거린다. 사이드 시스템 구축할 때처럼 결정을 내린다. 순살+다리 조합, 소스는 간장, 치즈는 추가. 콜라 2리터. 이걸 본다고 해서 뭔가 건강해지는 건 아니지만, 나는 마치 영양소 계산을 하는 것처럼 "단백질... 칼슘..."이라고 중얼거린다. 수량을 선택하고 주소를 확인한다. 집 주소. 당연히 집 주소다. 결제한다. 버튼을 누르는 그 순간, 약간의 신비로운 설렘이 생긴다. "주문이 접수되었습니다. 가게에서 준비 중입니다." 알림 메시지. 이제 시작이다. 나는 화면을 계속 본다. "요리 중 70%"... "요리 중 90%"... 그리고 마침내 "배달원이 픽업했습니다."11시 10분. 이제부터는 기다림의 순간이다. 게임을 할까? 유튜브를 볼까? 아니다. 나는 배달원의 위치를 추적한다. 지도에 빨간 마크가 움직인다. 우리 동네 골목을 누비고 다닌다. "벌써 여기까지 왔어?"라고 중얼거린다. 마치 실시간 로그를 모니터링하는 것처럼. "배달 예상 시간 5분" 알림이 뜬다. 그 5분이 길다. 진짜로. 세상에 가장 긴 5분은 커피를 기다리는 시간이고, 그 다음이 치킨 배달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나는 현관 문 앞으로 간다. 신발을 신는다. 빼낸다. 다시 신는다. 이게 정상적인 행동일까?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루틴이다. 그리고 초인종이 울린다. 나만의 극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배달원은 손에 따뜻한 포장을 들고 서 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그는 "감사합니다"라고 답한다. 문을 닫는다. 현관에서 거실로 온다. 콘크리트 바닥이 아닌, 정말로 따뜻한 집의 공간이 거기 있다. 소파에 앉는다. 박스를 열지 않는다. 아직 천천히 먹고 싶다. 영화를 킨다. 넷플릭스다. 뭘 볼까? 이미 본 시리즈 목록을 스크롤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벌써 10번 이상 봤다. "쇼생크 탈출"도 마찬가지다. 결국 나는 다큐멘터리를 켠다. "동물의 세계" 같은 거. 음소거 하고 자막만 켜놓아도 되는 종류의 콘텐츠다. 배경음이 필요할 뿐이다.이제 박스를 연다. 김이 모락모락 나온다. 그 냄새.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을 때의 그 쾌감과는 다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비슷한 만족감이 있다. 정말이다. 나는 닭다리를 집는다. 한입 물어뜯는다. 바삭하다. 바삭한데 속은 말랑하다. 간장 소스가 입에 퍼진다. 소금기와 단맛의 균형. 이거다. 이게 내가 원하던 거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뭐라고 할까? "주말에 또 치킨이야?", "항상 같은 거 먹네", "이게 웰빙이냐"...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그런 목소리들이 들리지 않는다. 음소거된 다큐멘터리에서 수사자가 얼룩말을 사냥한다. 이건 자연의 법칙이다. 나도 이 법칙을 따르고 있을 뿐이다. 내 먹이 사슬에서, 치킨은 정점이다. 두 시간이 흐른다. 박스는 비워진다. 콜라는 반쯤 마셔진다. 나는 소파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일 이유가 없다. 냉장고에서 나온 아이스크림을 집어 들고, 침대까지 걸어가는 거 말고는. 폰을 집는다. 단톡방을 본다. "개발이 뭐 어려운데, 이거 간단하게 할 수 있잖아?"라는 기획자의 메시지가 보인다. 월요일에는 이걸 보고 분노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냥 "내일이 아니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한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한 번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건 아까 봤던 생각이고, 앞으로도 끝까지 생각으로만 남을 것 같다. 완벽한 루틴의 또 다른 이름 누군가는 주말을 낭만적으로 보낸다. 산에 오르고, 영화관에 가고, 카페에서 새 책을 읽는다. 하지만 나는? 나는 집에 있다. 소파에 누워있다. 가끔은 이게 정상일까 생각한다. 34살 남자가 주말에 할 일이 치킨 배달뿐일까?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평일에는 남편이고, 직장인이고, 테크 리드고, 누군가의 코드 리뷰어다. 점심시간 30분이 내 자유다. 연속으로 15분 화장실 들어가는 게 반항이다. 회의 중에 유튜브를 보면서 "아 그거요"라고 답하는 게 내 자존감 유지 방법이다. 하지만 토요일은? 토요일은 내 것이다. 아내가 없고, 업무 메시지도 없고, 기획자의 황당한 요청도 없다. 그냥... 나. 그리고 따뜻한 치킨. 그리고 누군가의 방해받지 않는 자유로움. 이게 뭐 대단한 걸까?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토요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한테는? 이건 지켜내야 할 가장 소중한 루틴이다. 월요일이 오면 다시 시작된다. 시스템은 작동하고, 코드는 배포되고, 회의는 계속되고, 기획자는 또 "이거 간단하죠?"라고 묻는다. 하지만 그 때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알기 때문이다. 다음 토요일이 오면, 또 이 루틴이 반복된다는 것을. 10시 늦잠, 11시 25분 초인종, 2시간 소파. 변하지 않는 프로덕션 절차처럼. 그리고 이게 나를 일요일 밤 일찍 자는 죄책감도, 월요일 아침의 기진맥진함도 잠시 잊게 해준다. 아내는 10시 반쯤 된다고 했다. 나는 "알았어"라고 답한다. 아직 치킨 냄새가 살짝 남아있다. 냉장고에 콜라 반병이 남아있다. 내일도 이 자유로움이 계속되길 바란다.주말의 진정한 사치는 비싼 것이 아니라,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그 한두 시간이 아닐까.

퇴근 후 넷플릭스 탭: 왜 항상 같은 것만 보나

퇴근 후 넷플릭스 탭: 왜 항상 같은 것만 보나

퇴근 후 넷플릭스 탭: 왜 항상 같은 것만 보나 그 루틴이 시작된 지 언제쯤일까 저는 매일 퇴근한다. 6시에 정각 같은 건 아니지만, 대충 그즈음 노트북을 덮고 슬랙을 뮤트 한다. 아니, 주말에도 뮤트 풀 일 없도록 아예 알림을 꺼두고 있다는 게 맞다. 배포일은 예외지만, 그래도 최대한 빨리 끝내고 집에 가려고 한다. 집에 가면 뭘 할까? 처음엔 진지했다. 요즘 유명하다는 드라마 본다고 했고, 시즌 1부터 차근차근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료들이 얘기하는 명작들을 소화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오징어 게임》, 《달콤한 집》, 《종이의 집》... 리스트는 길었고 결심은 강했다. 그런데 지금? 지금은 그냥 넷플릭스 앱을 열고, 이미 시작한 드라마를 찾아 재생 버튼을 누른다. 같은 거다. 항상 같은 거다.폰 스크롤의 늪으로 빠져가며 넷플릭스 화면은 켜져 있다. 오프닝 영상이 흘러나온다. 그런데 손에 폰이 있다. 슬랙을 확인한다. 아무도 나한테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을 텐데, 왜 자꾸 확인할까. 직업병이다. 팀장이 갑자기 배포를 요청할 수도 있고, 인턴이 PR 리뷰를 재촉할 수도 있으니까. 퇴근했는데도 머리에서는 계속 일이 돈다. 인스타그램을 본다. 피드에서 봤던 사진들이 또 보인다. 릴스 가면 한 곡이 끝나고 다음 곡이 나온다. 화면을 아래로 밀어내린다. 또 밀어낸다. 계단을 내려가는 것처럼 계속 내려간다. 디바운싱(debouncing)이 없는 무한 스크롤이다. 이렇게 10분이 가고, 30분이 간다. 넷플릭스는 여전히 재생 중이다. 나는 화면을 안 본 지 30분이 됐다.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배운 진짜 비즈니스 모델이 뭔지 아나? 드라마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폰을 손에서 떨어지게 못 하는 거다. 한 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도록 설계된 시스템. 내가 매일 밤 그 먹이사슬 맨 아래에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게 편하다. 뭔가 새로운 걸 시작할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의사결정 피로를 덜 수 있다. "오늘 뭘 볼까?" 같은 질문은 이미 과거형이다. 이미 시작한 거 계속 보면 된다. 같은 드라마만 계속 재생되는 이유 여기서 재미있는 패턴을 발견했다. 내가 "새로운 걸 봐야지"라고 다짐한 적이 몇 번인가. 마음먹고 드라마 목록을 돌아다닌 적도 있다. 흥미로워 보이는 타이틀을 클릭했다. 그리고... 포기했다. 왜냐하면 피로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작품은 새로운 스토리, 새로운 캐릭터, 새로운 감정을 요구한다. 퇴근한 뇌는 거기까진 못 간다. 우리 뇌는 최소 저항 경로를 선택하도록 진화했고,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반복하는 게 가장 편하다. 내가 이미 시작한 드라마는 다르다. 1화는 이미 봤으니까 내용을 조금 안다. 2화도 본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줄거리가 흐릿하지 않다. 다시 보는 순간, 기억이 돌아온다. "아, 이 장면 있었지." 이 정도의 자극이면 충분하다. 나는 사실 드라마를 보고 있지 않다. 소음을 틀어놓고 있는 거다. 거실에 정적만 있으면 불안하니까. 폰을 들지 않을까봐서. 뭔가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려고.슬랙은 여전히 울리지 않지만 퇴근한 지 1시간이 됐다. 넷플릭스는 아직도 재생 중이다. 드라마 에피소드가 끝나고 자동 재생으로 다음 편이 시작된다. 나는 여전히 폰을 보고 있다. 아내가 들어올 시간이 되면 좀 정신을 차린다. "오늘 하루 어땠어?"라고 물으면 "음, 뭐 별로네. 너는?"이라고 대답한다. 이미 외출했던 옷은 벗고 집에서만 입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거실 조명도 꺼뒀다. TV 화면의 빛이 조명 역할을 한다. 저녁을 먹는다. 아내가 집에 있으면 뭔가 함께하는 시간이 생긴다. 그 사이에 드라마는 계속 재생된다. 밥을 다 먹고 나면 다시 소파에 누운다. 손 닿는 곳에 폰이 있다. 아내가 옆에 있어도 폰을 본다. 이미 익숙해졌다. 서로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다른 화면을 보는 일. 이게 이 세대의 부부 문화인가 싶기도 한다. 자정이 다 돼 가면 눈이 무거워진다. 그래도 한 편만 더 본다고 다짐한다. 한 편이 끝나면 또 한 편만 더. 결국 아내가 먼저 자러 간다. "너 먼저 자. 나도 곧 간다."라고 한다. 근데 안 간다. 폰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어느 순간 폰이 떨어진다. 잠들었다. 넷플릭스는 아직 재생 중이다. 배터리 25%. 자동 잠금까지 3분 남았다. 화면은 계속 빛난다. 읽지 못한 슬랙 메시지들 휴일 아침, 눈을 뜬다. 폰을 집어 든다. 첫 번째로 하는 일은 슬랙을 확인하는 것이다. 자동으로 튼다. 손가락이 알아서 한다. "으... 뭐가 이렇게 많아?" 팀 채널에 메시지 3개, 개인 채널에 멘션 2개, 시스템 알림 7개. 대부분은 별거 없다. 동료가 공유한 아티클, 팀 회의 내용, 배포 결과 보고. 그런데 몇 개는 어제 저녁에 온 거다. 내가 자고 있던 시간에. "아, 이거 답장해야 하나..." 생각만 하고 창을 닫는다. 주말이니까 나중에 하자. 나중에란 보통 월요일 아침 출근할 때인데, 정확히는 커피를 마신 후다. 첫 커피는 목을 헹구는 용도다. 이게 반복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습관이 됐다. 퇴근하면 슬랙을 보지 않는다. 아니, 본다. 하지만 답을 안 한다. 회신할 에너지가 없다. 그리고 내일도, 모레도 같으니까 지금 할 필요가 없다고 자기기만한다. 그런데 이게 정말 건강한 건가? 나도 감시당한다는 느낌은 안 받지만, 뭔가 도망치고 있는 건 같다. 넷플릭스에서 도망치고, 폰에서 도망치고, 결국 자기 자신에게서 도망치는 거 같다.이게 정상이라는 게 더 무서운 이유 주말에 게임을 했다. 진짜 게임, 즉 폰 게임 말고. 실제로 콘솔에서 하는 그런 거. 아내가 권했다. "너 요즘 폰만 본다. 너 원래 이런 사람 아니었잖아." 맞다. 나는 원래 코딩이 좋았다. 집에 와서도 사이드 프로젝트 같은 거 생각했었다. 새로운 라이브러리 시도해보고, 재미있는 알고리즘 문제 풀고. 그래서 처음에 신입 때는 계속 배워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지금은 폰을 본다. 매일 밤.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이게 정상이라는 게 무서워서다. 직장 동료들한테 이 얘기를 했다. "너 퇴근 후에 뭐 해?"라고. 대충 다 똑같은 답이다. "그냥... 쉰다." "쉬는 방법이 뭔데?" "폰 본다. 드라마 본다. 별 거 없어." 우리는 모두 같은 늪에 빠져 있다. 그리고 그게 정상처럼 느껴진다. 아무도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반공학적인 표현을 하자면, 이건 디자인 문제다. 넷플릭스와 폰은 우리가 계속 붙어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알고리즘은 우리의 취향을 학습하고, 자동 재생은 우리의 마음을 읽는다. "계속 보시겠습니까?" 같은 짜증나는 팝업은 없다. 그냥 다음 에피소드가 자동으로 켜진다. 우리는 편함을 추구한다. 그리고 그 편함은 점점 깊어진다. 그럼 어떻게 할 건데? 여기가 참 어려운 부분이다. 나는 답을 모른다. "내일부터는 달라질 거야"라는 다짐은 더 이상 안 한다. 너무 많이 했으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퇴근하면 독서를 해야지"라고 생각한다. 근데 퇴근해서 소파에 누우면, 손이 자동으로 폰을 집어 든다. 뇌가 이기는 거다. 그렇다고 무포기하는 건 아니다. 겨우 그 정도 의지력도 못 발휘냐고 스스로를 채찍질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별로 생산적이지 않다. 나는 이미 업무 시간에 충분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퇴근해서까지 자신한테 엄격할 이유가 뭐 있나. 대신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한다. 넷플릭스 재생을 멈추는 건 못 해도, 조금 다른 환경을 만들 수는 있다. 예를 들어, 거실 조명을 끄지 말기. 아니면 폰을 손 닿지 않는 곳에 두기. 아니면 아내와 함께 보기. 사실 제일 좋은 방법은 피곤하지 않은 것 같다. 지금 내가 퇴근 후 에너지가 없는 이유는, 퇴근 전까지 이미 다 소진했기 때문이다. 후배 PR 리뷰하고, 기획자 요구사항 해석하고, 레거시 코드와 싸우고, 배포 스트레스 받고. 남은 건 빈 깡통뿐이다. 그러니까 문제는 퇴근 후가 아니라, 근무 중일 수도 있다. 저 화면을 끄는 날이 올까 최근에 좋은 일이 있었다. 회사에서 토이 프로젝트를 해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우리 팀이 뭔가 새로운 기술을 시도해보는 거다. 최근 핫한 프레임워크 같은 거. 처음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또 일을 더 하라는 거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일주일 정도 지나니까 마음이 바뀌었다. 이건 업무가 아니라 공부인 거고,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내 손이 다시 키보드로 움직였다. 집에 가서도 그걸 생각했다. 새로운 라이브러리는 뭐가 다를까? 이걸 어떻게 적용해볼까? 넷플릭스를 틀어놨지만, 5분이 채 안 돼서 껐다. 딱 하나의 이유로.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그 밤에 나는 폰을 안 들었다. 노트북을 켰다. 간단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봤다. 코드를 짰다. 에러가 났다. 스택오버플로우에서 답을 찾았다. 다시 시도했다. 작동했다. 자정을 넘었을 때, 문득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몰랐다. 그건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플로우 상태"라고 심리학에서 부르는 그 감각.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는 상태. 분명히 이게 내가 좋아하던 일이었다. 내가 일이란 걸 선택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언제쯤 마지막으로 이 감정을 느꼈지? 넷플릭스 자동 재생 화면을 넘어, 폰 무한 스크롤을 벗어나면, 내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그 생각이 들었다. 아직 희망은 남아 있다는 뜻이다. 내일 퇴근하면 뭘 할까? 아마 넷플릭스를 틀 것 같다. 습관이니까. 폰도 들 거고. 그런데 한 가지는 다를 거다. 한 번쯤은, 그냥 한 번쯤만 화면을 끄고, 노트북을 켜 볼 생각을 해야겠다는 것.결국 우리가 봐야 할 건 화면이 아니라 미래다.

점심시간 김치찌개집 단골이 되다

점심시간 김치찌개집 단골이 되다

점심시간 김치찌개집 단골이 되다 "김개발님 오셨어요" -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아, 진짜 이 맛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단순히 음식 때문만은 아니다. 어제도 갔고, 오늘도 갔고, 내일도 갈 것 같은 이 불안감과 묘한 중독성을 말하는 거다. 회사 출입구에서 나와 왼쪽으로 50미터,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낡은 간판에 '할매 김치찌개'라는 글씨가 흐릿하게 남아있다. 처음 그곳을 찾아간 건 신입사원 때였다. 배고프고, 근처에 뭐가 있나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들어간 식당. 그때만 해도 그냥 "아, 여기 괜찮네" 정도의 느낌이었다. 가격도 저렴했고, 맛도 무난했고, 사장님이 불친절하지도 않았다. 그게 함정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몇 주 전부터 사장님이 내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김개발님 오셨어요!"라고. 처음엔 당황했다. 내가 언제 이름을 말했나 싶어서. 나중에 알고 보니 회사 사람들이 자주 와서, 그들이 "김개발이 자주 온다"고 한 말을 사장님이 기억하고 있었던 거다. 그게 얼마나 무섭고 부끄러운 일인지 아나?그런데 여기서 웃긴 게, 내가 인정하기 싫지만 그 순간이 정말 좋다는 거다. 회사에서는 에러 처리하고, PR 리뷰하고, 기획자의 말도 안 되는 요구사항을 들어야 하는데, 이 골목 안 식당에서만큼은 "어서오세요"가 아니라 "김개발님"이라고 불린다. 그 사람이 나를 기억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뭔가 내가 존재한다는 걸 확인하는 느낌이다. 개발자는 모니터에만 붙어있다가 번아웃되는 직업인데, 여기서 10분간 국물에 고개를 묻고 있으면 그게 다 사라진다. 사실 점심시간이라는 게 백엔드 개발자의 유일한 진짜 휴식시간이다. 아침 9시에 들어오면 슬랙이 이미 100개 정도 쌓여있고, 배포 관련 문제로 팀원들이 나를 찾고, 레거시 코드는 왜 이렇게 짜놨는지 답답하고, 회의는 또 회의고... 그 와중에 점심이 되면 일단 컴퓨터에서 눈을 떼는 게 규칙이다. 눈을 못 떼면 "빨리 돌아와야 해" 같은 불안감에 밥도 못 넘긴다. 단골손님의 특권 - 맥락 없이 통하는 소통 "어제 묵은지는 정말 좋더라, 오늘 또 소비했어요?" 사장님이 나한테 하는 인사가 이 정도다. 완전한 문장도 아니고, 생략도 많고, 문법도 이상하지만 그게 뭔가 따뜻하다. 마치 엄마가 "밥 먹었어?" 하는 것처럼. 누군가 내 일상의 디테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현대 도시생활에선 거의 사치에 가깝다. 나도 그에 맞춰서 비슷하게 대답한다. "네, 정말 맛있어요. 추천 받고 매일 와도 질리지 않아요." 이런 식의 기계적인 대답이 아니라, 그냥 "네, 진짜요"라고만 말한다. 그럼 사장님이 웃는다. 깊은 의미는 없겠지만, 그 웃음이 얼굴에 찬 피로를 녹인다.메뉴 변화도 나는 항상 감지한다. 몇 주 전에 묵은지를 한 번 써봤던 날, 사장님이 "이거 좋지?" 하면서 자기 엄지손가락을 펴 보였다. 나는 "진짜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왜 이제야 했어요?"라고 말했고, 그 이후로 늘 기본으로 깔려있다. 이게 얼마나 사치스러운 경험인지 알아? 음식점에서 내 입맛을 기억해주고, 그에 맞춰 메뉴를 조정해주는 일이. 회사에서는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해도, PR 리뷰를 퀄리티 있게 해도, 버그를 다 잡아내도, 사람들은 "어? 그럼 이것도 좀 봐줄래?" 하고 자연스럽게 더 많은 걸 요구한다. 내 취향이나 상태 따위는 관심 없다. 그냥 한 명의 자원이고, 리소스일 뿐이다. 근데 여기선 다르다. "요즘 바쁜 것 같은데 피곤해 보여. 국 많이 줄까?"라는 질문이 나온다. 응? 내가 뭐라고 한 적도 없는데? 그냥 얼굴을 봤을 뿐인데? 이게 진짜 음식점 사장님과의 상호작용이 맞나 싶을 정도다. 거의 매일인데 뭔가 불안한 그 느낌 그런데 이게 문제다. 나는 지금 이 상황에 거의 중독된 상태다. 점심시간에 다른 곳을 먹을 생각을 하면 뭔가 불안하고, 이 식당을 못 가는 날은 온종일 마음이 뜬뜬하다. 전에는 가끔 건너편 회사원 식당에서 콩나물밥도 먹고, 라면도 사 먹고 그랬는데 이제는 생각도 안 난다. "아 그거요" - 내 입버릇처럼, 이건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강박증인가? 아니면 그냥 일 때문에 지친 마음이 찾아낸 피난처인가? 내일도 갈 것 같고, 그 다음날도 갈 것 같은데, 이게 정상인가 싶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회사에서 집에 가기 전에 여기 들렀다. 점심도 먹었는데 왜 또 들렀냐고? 커피를 마실 겸. 아니, 거짓말하자. 그냥 여기 있고 싶었다. 따뜻한 국물을 들이켜고, 누군가 "어서오세요"가 아니라 내 이름을 부르는 곳에 있고 싶었다. 그 10분 안에 모든 것이 괜찮은 것처럼 느껴진다. 레거시 코드도, 불합리한 기획도, 없는 승진도, 다 사라진다.문제는 여기가 한계라는 거다. 사장님은 내 이름을 부르지만,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건 아니다. 오늘도 회사에 돌아가면 또 다른 배포가 있을 테고, 후배의 코드는 또 엉망일 테고, 기획자는 또 "간단하죠?"라고 할 거다. 하지만 점심시간 12시부터 12시 40분까지는, 이 골목의 따뜻한 김치찌개 냄새 속에서 나는 "김개발"이 아니라 그냥 누군가로부터 기억되는 누군가다. 아내한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웃었다. "당신, 거기 진짜 매일 가네. 이미 사장님이 당신 좋아하는 거 아니야? 당신도 거기 좋아하는 거 아니고?" 맞다. 이건 상호적인 관계다. 내가 단골이 되고 싶어 한 게 아니라, 어느 순간 둘 다 이렇게 되어버렸다. 사장님도 나를 보면 반갑고, 나도 사장님을 보면 안심이 된다. 내일도 점심시간 12시에 그곳으로 갈 거다. 아마도 모레도, 그다음날도. 완벽하지 않은 내 일이나 다른 복잡한 상황들을 정당화하려고 이렇게 글을 쓰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이 10분 40초는 나를 단순하게 만들어준다. 코드도 없고, 버그도 없고, 기획자도 없는 그곳에서 나는 그냥 밥 먹는 사람이 되면 된다. 혹시 누군가 이 글을 읽으면서 "아, 나도 그런 곳이 있었는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 공간의 이름이 뭐든 상관없다. 사장님이 너를 기억하는 식당일 수도, 창가 카페일 수도, 산책로의 벤치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곳이 너를 알아준다는 거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 시대에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것만큼 큰 위로는 없다.결국 난 김치찌개가 아니라 그곳에서 불리는 이름이 그리워 하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