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저가 없는 팀: 누가 책임질까?
- 26 Dec, 2025
매니저가 없는 팀: 누가 책임질까?
팀장 없는 팀의 아침
월요일 아침 9시. 우리 팀 자리에 앉는다. 5개 모니터가 켜진다. 근데 팀장 자리는 비어있다. 원래 없다.
우리 팀은 7년 전부터 그랬다. 정식 팀장이 없다. 처음엔 이상했다. 지금은 익숙하다.
슬랙에 메시지가 온다. 기획팀에서. “이번 기능 일정 언제까지 가능할까요?” 나한테 온다. 항상 나한테 온다.
“아 그거요. 확인하고 알려드릴게요.”
내가 답한다. 팀원들한테 물어볼 것도 없다. 그들도 모른다. 내가 알아서 답해야 한다.

권한 없는 책임자
내 직함은 “선임 개발자”다. 그게 다다. 팀장 아니다. 리더 아니다. 그냥 제일 오래 있었다.
근데 실제로는? 전부 다 한다.
일정 조율. 업무 분배. 코드 리뷰. 아키텍처 결정. 신입 교육. 장애 대응. 다른 팀 커뮤니케이션.
월급은? 6500만원. 다른 회사 팀장들은 8천 넘게 받는다는데.
권한은? 없다.
휴가 승인? 부장한테 물어봐야 한다. 채용? 인사팀 통해서. 성과 평가? 내가 쓰긴 하는데 최종은 부장이 한다.
웃긴 건 부장은 우리 팀 업무를 모른다. 당연하다. 개발 안 해본 지 10년 됐으니까.
애매한 위치의 현실
지난주 금요일. 신입이 실수로 프로덕션 DB에 잘못된 쿼리를 날렸다.
부장한테 전화 왔다. “어떻게 된 거냐?”
“죄송합니다. 제가 미리 확인했어야 했는데.”
내가 사과했다. 신입은 옆에서 얼굴이 하얗다.
복구하는 데 3시간 걸렸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다.
월요일 아침. 신입이 사표를 썼다고 한다. 부장한테.
나는? 아무도 안 물어봤다. 권한이 없으니까.
“저는 계속 일하고 싶은데요.” 신입이 나한테 말했다.
“부장님한테 말씀드려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다였다.
결국 부장이 붙잡았다. 나는 구경만.

자유라는 이름의 책임
좋은 점도 있다. 많다. 솔직히.
회의가 적다. 부장이 관여 안 하니까. 우리끼리 결정하면 끝이다.
기술 스택 선택도 자유롭다. “이거 왜 쓰냐” 같은 질문 안 받는다. 신경 안 쓴다는 뜻이다.
출퇴근도 유연하다. 10시에 와도 누가 뭐라 안 한다. 일만 하면 된다.
근데 이게 전부 내 책임이다.
팀원이 9시에 안 오면? 나한테 연락 온다. 일정이 밀리면? 나한테 물어본다. 장애 나면? 나한테 전화 온다. 새벽 3시에도.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의사결정의 무게
지난달. 레거시 시스템 전면 개편 건이 올라왔다.
2개월 프로젝트. 팀원 전체 투입. 다른 기능 개발은 전부 멈춰야 한다.
부장이 물었다. “가능하냐?”
”…검토해보겠습니다.”
주말 내내 생각했다. 2개월로는 빡빡하다. 3개월은 필요하다. 근데 일정을 늘리면? 다른 팀 일정도 다 밀린다.
팀원들한테 물어봤다.
“형이 판단하면 따르겠습니다.” 4년차가 말했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2년차가 말했다.
결국 내가 결정했다. 2개월 반으로 가자고. 주말 근무 없이.
지금? 프로젝트 진행 중이다. 일정은 딱 맞춰가고 있다. 근데 매일 불안하다. 내가 잘못 판단한 건 아닐까.

인정받지 못하는 리더십
작년 연말 평가.
“올해 팀 성과가 좋았어요. 수고했습니다.” 부장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리더십을 좀 더 발휘하면 좋겠어요.”
”…네?”
“팀을 이끄는 모습을 보여줘야죠.”
웃겼다. 내가 1년 내내 뭘 한 건데.
일정 관리. 업무 분배. 멘토링. 다른 팀 조율. 장애 대응. 기술 부채 관리.
근데 “리더십을 발휘하라”고?
이유는 알았다. 부장 눈에는 안 보인다. 내가 하는 일의 90%가.
그가 보는 건 회의 시간뿐이다. 그 시간에 나는 말이 적다. 기술 이야기는 부장이 이해 못 하니까.
결국 평가는 B였다. 연봉 인상률 3%.
그날 퇴근길. 편의점에서 맥주 3캔 샀다. 집에서 혼자 마셨다.
누가 나를 평가하나
제일 이상한 건 이거다. 내 업무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
부장은? 개발 모른다. 동료들은? 내가 평가한다. 다른 팀은? 결과물만 본다.
그럼 내가 잘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까?
모른다. 정말로.
피드백이 없다. 좋다는 말도, 나쁘다는 말도. 그냥 일이 돌아가면 잘하는 거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팀이 제대로 안 돌아갈 거다. 확신한다. 근데 회사는 알까? 모를 거다. 바로는.
3개월쯤 지나서 알겠지. “아 그때 그 사람이 이런 걸 했구나.”
그때는 이미 늦었다.
책임과 권한의 불균형
정리하면 이렇다.
나는 팀을 이끈다. 하지만 팀장이 아니다. 결정을 한다. 하지만 최종 권한은 없다. 책임을 진다. 하지만 보상은 적다.
이게 말이 되나? 안 된다. 근데 현실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회사가 편하니까. 팀장 뽑으면 월급 더 줘야 한다. 내 월급은 그대로 두고 일만 시키면? 이득이다.
나는 왜 받아들일까?
귀찮아서. 이직하려면 이력서 쓰고 면접 보고 새 회사 적응하고.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그리고 솔직히. 지금 팀이 싫지는 않다. 팀원들 괜찮다. 일도 재밌다. 가끔은.
대안은 있을까
가끔 상상한다. 제대로 된 팀장이 있다면?
내 업무의 반은 줄어들 거다. 일정 관리. 대외 커뮤니케이션. 인사 문제. 전부 팀장이 할 일이다.
나는? 코드만 쓰면 된다. 아키텍처만 고민하면 된다. 기술만 파면 된다.
꿈 같은 이야기다.
현실은? 바뀔 가능성이 없다. 회사가 변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럼 내가 바뀌어야 하나? 이직해야 하나?
모르겠다. 솔직히.
끝나지 않는 고민
오늘도 슬랙 메시지가 온다. “이 기능 언제까지 가능할까요?”
“확인하고 알려드릴게요.”
똑같은 답. 매번.
모니터를 본다. 펜을 돌린다. 생각한다.
이게 정답인가? 이대로 계속 가야 하나?
답은 없다. 아직은.
커피를 마신다. 세 번째 아아.
일을 한다. 그게 내 일이니까.
매니저 없는 팀의 사실상 리더. 책임은 무겁고, 인정은 적고, 권한은 없다. 그래도 오늘 출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