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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책이
- 02 Dec, 2025
테크 리드인데 직책이 없는 개발자의 슬픈 현실
테크 리드인데 직책이 없는 개발자의 슬픈 현실 월요일 아침 9시. 출근해서 첫 번째 할 일은 슬랙 확인이다. 주말에 올라온 PR이 3개. 후배들이 기다리고 있다. 내가 안 보면 머지가 안 된다. 그들은 나를 기술 리드라고 부르고, 난 그렇게 행동한다. 근데 직책은? 개발자. 그냥. 개발자. 커피를 마신다. 첫 번째다. 아 그거요, 하면서 PR을 본다. 주니어가 짠 코드다. 구조가 이상하다. 리팩토링이 필요하다. 근데 내가 코드를 다시 짜줄 수는 없으니까 "이 부분에서 의존성이 뭔지 생각해봐요"라고 댓글을 단다. 그게 메멘토링이다. 멘토링이 아니라 메멘토링. 내 시간을 쪼개서 하는. 3년 다음에 이직한 친구는 시니어 개발자다. 직책도 있고 연봉도 7천대라고 했다. 나? 6500만원. 올해도 200만원 인상되고 끝.업무 현황: 나는 누구인가 사실 나는 테크 리드다. 팀의 기술 방향을 정한다. 새 프레임워크 도입할 때 나한테 물어본다. 레거시 코드 얘기 나올 때 다들 날 쳐다본다. 마이그레이션 프로젝트? 내가 계획 짠다. 아키텍처 리뷰? 내 책임이다. 그런데 직책은 개발자다. 팀 회의에서 내 발언이 '의견'이 아니라 '지시'로 들린다는 걸 안다. 근데 공식적으로는 선임이 아니니까 누가 책임질 건 애매하다. "그렇게 했어요"라고 하면 "그거 누가 결정했어?"라고 물어본다. 나다. 내가 했다. 근데 나는 개발자고 선임은 아니고. 후배 성과평가? 내가 쓴다. 근데 평가 논의할 때 나는 반영만 된다. 경영진은 직급이 뭐라고 물어본다. 아, 개발자다. 그럼 의견만 듣겠습니다. 라고 한다. 의견만. 페이 밴드는? 개발자 페이 밴드다. 시니어 밴드까지 가려면 1년이 더 필요하다고 HR이 말했다. 그 1년 동안 나는 테크 리드고 지금과 같이 일한다. 이게 3년이다. 커피를 마신다. 두 번째다. 토요일의 업무 "김개발님, 이거 어떻게 생각해요?" 토요일 오후 2시. 쉬는 날인데 슬랙이 울린다. 선임 개발자다. 새 프로젝트 기획이 나왔대. 아키텍처 검토 해달래. 내가 봐야 한다. 안 보면 월요일에 틀린 방향으로 간다. 3명이 틀린 길을 1주일 간다. 그럼 사이클 터진다. 그럼 내 일이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주말 오후 2시에 설계 문서를 본다. 칠판을 꺼낸다. 아니 모니터 앞에 앉는다. 생각한다. 펜을 돌린다. 1시간 후 슬랙에 장문의 메시지를 쓴다. "데이터베이스 스키마는 이렇게 가고, 캐시 레이어는 Redis로..." 장황하게 쓴다. 근데 꼭 필요한 내용이다. 없으면 틀린다. 선임: "역시 김개발님이네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 말이다. 월급에 포함되지 않는 일이 한 번씩 감사합니다로 끝난다. 그래도 필요하니까 한다. 아내는 뭐해, 라고 묻지 않는다. 나도 답하지 않는다. 토요일이라는 걸 둘 다 잊는다.면접 준비할 마음 이직할 거야? 하는 질문 많다. 동기들 톡방에도 올라온다. "요즘 대기업 시니어 연봉 9천대라던데?" 나도 봤다. 2달마다 본다. 그리고 다시 슬랙을 켠다. 이직할 마음이 있다. 진짜 있다. 그런데 마음이 없다. 면접을 봐야 한다. 포트폴리오를 정리해야 한다. 깃허브를 봐야 한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나 띄워야 한다. 혹은 과거 프로젝트를 정리해야 한다. 그걸 할 에너지가 없다. 일과가 끝나면 넷플릭스를 킨다. 뭘 보든 상관없다. 그냥 킨다. 생각을 안 하려고. 주말에 일어나서 면접을 준비할까, 할 생각을 하다가 라면을 끓인다. 라면을 먹으면서 자기 전까지 폰을 본다. 페이스북에서 동기들 사진을 본다. 근데 게시물에 좋아요는 안 누른다. 그리고 월요일 오전 9시가 된다. 아 그거요. 후배를 가르친다는 게 "이 부분에서 왜 싱글톤 패턴을 썼어요?" 새로 온 후배다. 2년차. 내가 물어본다. 그러면 그 질문이 시작이다. 그 질문 하나로 30분이 간다. 나는 가르쳐야 한다. 안 가르치면 내일 다시 틀린다. 모레도 틀린다. 그럼 내가 고친다. 시간이 2배가 된다. 그래서 가르친다. 설명한다. 왜 싱글톤이 문제인지. 스레드 안전성이 뭔지. 테스트 불가능성이 뭔지. 그럼 대안이 뭔지. 후배가 이해했다.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30분이 사라졌다. 내 일은 30분 밀렸다. 그 30분은 퇴근 후에 한다. 근데 이게 계속 반복되니까 하루에 2시간이 간다. 5일이니까 10시간이 간다. 한 주에 10시간. 한 달이면 40시간. 그게 내 시간이다. "선임 개발자니까 이 정도는 당연하지" 라고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근데 그렇게 생각한다. 월급에 후배 교육비가 포함되나? 아니다. 근데 포함된다. 매달 40시간. 월급을 시급으로 나누면 얼마지. 계산은 안 해도 알 수 있다. 담배 피는 척하고 베란다에 나간다. 생각한다. 뭘? 아무것도. 그냥 5분을 버린다.'간단하죠?'의 무게 기획자가 온다. 회의실에 10명이 앉아 있다. 나를 포함해서. "이거 사실 간단하니까 한 3일이면 되겠죠?" 간단하면 너가 해. 내가 말하진 않는다. 그냥 생각한다. 입으로는 "어, 알겠습니다"라고 한다. 간단하다. 정말 간단하다. 단순하게 따지면. 버튼을 누르면 데이터가 저장되게 하면 된다. 그게 간단한 거다. 기획자 입장에선. 그런데 데이터 검증은? 권한 체크는? 동시성 문제는? 롤백은? 로깅은? 모니터링은? 테스트는? 3일이 10일이 된다. 10일이 끝나면 QA에서 버그를 찾는다. 3일치 버그를. 왜냐면 3일에 되게 하려고 했으니까. 야간에 고친다. 기획자는 "역시 세밀하네요"라고 한다. 세밀해서가 아니라 기본을 했을 뿐인데. 근데 이게 반복되니까 의심한다. 내가 느린 걸까? 다른 회사의 개발자들은 3일에 하나? 아니다. 나는 안다. 다들 이렇다. 근데 말 안 할 뿐이다. 그래서 회의실에서 "네, 간단하겠습니다"라고 한다. 나오면서 한숨 쉬고, 책상에 앉아서 모니터를 봐도 계획서가 눈에 안 들어온다. 펜을 돌린다. 회의가 끝난 지 1시간이 지났는데도 펜을 돌린다. 레거시와의 전쟁 "이거 왜 이렇게 짜놨어?" 3년 전 코드다. 내가 짠 게 아니다. 그 전 선임이 짠 거다. 그런데 그 선임은 회사에 없다. 구조가 이상하다. 디자인 패턴이라고 할 수 없다. 그냥... 동작한다. 그게 전부다. 고쳐야 한다. 근데 안 고친다. 왜? 시간이 없다. 새 기능을 해야 하고, PR 리뷰를 해야 하고, 후배를 봐야 하고, 토요일 오후의 아키텍처 설계를 해야 한다. 레거시는 여기에 있다. 계속 동작한다. 버그는 가끔 난다. 그럼 패치한다. 근본은 못 본다. 3년 후배가 와서 묻는다. "이거 왜 이렇게 짜놨어요?" 내가 답한다. "아, 그거요..." 나도 모른다고 할 수도 있다. 근데 말하지 않는다. 왜냐면 나는 시니어 개발자처럼 일하니까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비즈니스 요구사항이 이랬거든요"라고 말한다. 거짓이 아니다. 근데 전부도 아니다. 밤 11시. 배포 전 마지막 체크다. 레거시 코드를 본다. 여전히 이상하다. 근데 동작한다. 배포한다. 집에 가는 길에 "언젠가 고쳐야지"라고 생각한다. 근데 그 날은 안 온다. 슬랙 알림, 나의 적 알림 음소거. 늘 켜져 있다. 주말인데도. 저녁 8시인데도. 밤 11시인데도. 음소거 상태로. 빨간 숫자가 쌓인다. 1, 5, 12, 27. 27개의 알림. 다 나한테다. 아니 일부는 전사 공지다. 그래도 20개 이상은 내 책임이다. 기획이 변했다. 리뷰 요청이 3개 왔다. 후배가 막혔다고 한다. 선임이 의견을 물었다. 그리고 또 뭔가. 이게 밤 11시 30분의 내 상황이다. 주말 오후라고 생각할 때도 그렇다. 슬랙이 울릴까봐 음소거에서 볼륨을 내렸다가 다시 음소거로 한다. 확인할까봐. 확인하면 일한다. 일하고 싶지 않다. 근데 일 생각이 나 이상하게 괜찮다. 자는 것보다. 그래서 음소거를 푼다. 알림을 본다. 30분이 일로 간다. 그리고 또 음소거를 한다. 근데 마음은 음소거가 안 된다. 아내와의 저녁 "오늘 뭐했어?" 8시 반. 저녁 시간이다. "일했어. 후배 코드 리뷰하고." "토요일인데?" "응." 대화가 끝난다. 아내도 야근한 날이 많다. UI 디자이너. 리뷰가 많다. 근데 코드 리뷰는 내 몫이다. 내가 아니면 못 본다. "내일은 쉴 거야?" "배포일인데..." "또?" 네. 또다. 라면을 끓인다. 아내는 회사 일로 정신없다. 나도 회사 일로 정신없다. 근데 라면은 끓인다. 어제도 라면이었나?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 아내가 소파에 누웠다. 노트북 위에. 나도 소파에 누웠다. 폰 위에. 같은 공간에 있는데 다른 세상에 있다. 이게 저녁이다. 밤 10시가 되면 자야 한다. 내일 아침은 7시 반에 일어난다. 그리고 또 커피. 동기들과의 거리 "너 시니어 됐어?" 카톡에서 묻는다. 3년 전 후배다. 지금은 내 동료가 아니다. 다른 회사다. "아직." "3년인데?" "응." 뭐라고 설명할까? 테크 리드인데 직책이 없다고? 그럼 왜 안 옮기냐고 물을 게 뻔하다. 나도 그 대답을 못 한다. "연봉도 못 올렸어?" "200만원." "어? 나는 1년에 600만원 올랐는데?" 모르겠다. 그 친구는 이직했다. 시니어로. 6개월 만에 연봉이 8천대가 됐다고 했다. 근데 야근이 많댔다. 번아웃 위험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3개월 후에는 연락이 없었다. 근데 내가 덜 바쁜 건가? 아니다. 내가 더 바쁘다. 근데 시니어로 안 불린다. 후배들 앞에서는 테크 리드처럼 행동하고 경영진 앞에서는 개발자다. 둘 다 아니고 둘 다다. 연락을 받은 지 3시간 후에 답한다. "화이팅." 그게 다다. 오늘도 커피 세 번째 커피를 마신다. 오후 3시. 어제 아침에 일어난 지 24시간도 안 됐는데 벌써 세 번째다. 첫 번째는 출근 직후. 깨어나기 위해. 두 번째는 회의 전. 정신 차리기 위해. 세 번째는 지금. 이유는 없다. 그냥 마신다. 커피가 없으면 이 업무가 안 된다. 근데 커피가 있어도 된다. 모순이다. 근데 마신다. 펜을 돌린다. 모니터를 본다. 코드를 본다. 문제가 있다. 해결해야 한다. 내일도 같은 일을 한다. 모레도. 그 다음날도. 그리고 어느 날 슬랙에서 "김개발님 시니어 됐대요"라는 말이 나올 거다. 근데 그때도 일은 같다.내일은 좀 나아지겠지.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