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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 05 Jan, 2026
팀원들이 자신을 리더로 보는 불편함과 책임감
아침부터 슬랙 멘션 출근하자마자 슬랙 멘션 5개. "개발님, 이거 어떻게 하면 될까요?" "DB 설계 리뷰 부탁드립니다." "이 라이브러리 써도 될까요?" 커피도 안 마셨다. 9시 2분. 다들 나한테 물어본다. 2년차 박신입부터 4년차 최선임까지. 정작 팀장은 회의 중이고, 나는 그냥 7년차다. 직책 없다. 월급도 제일 많이 받는 것도 아니다. 근데 왜 다들 나한테 물어보는 거지.점심시간 회피 식당 가는 길에 3년차 이주니어가 붙었다. "선배님, 아까 그 API 설계 괜찮을까요? 제가 생각한 건..." 밥 먹으면서도 기술 얘기. 김치찌개 식었다. 사실 이주니어 실력 괜찮다. 근데 확신이 없는 거다. 그래서 내 승인을 받으려고 한다. 마치 내가 리더인 것처럼. 근데 나는 리더가 아니다. 팀장은 따로 있다. 40대 중반. 개발은 안 한 지 5년 됐다. 회의만 한다. 기술적 결정은 "개발님이 잘 아시니까 알아서 하세요" 라고 한다. 알아서 하라고? 책임은? 월급은 똑같이 받으면서.PR 리뷰의 무게 오후 2시. PR 7개 쌓였다. 다들 내 리뷰 기다린다. 팀장 리뷰는 형식적이다. "수고하셨습니다" 도장만 찍는다. 실제로 코드 보는 건 나다. 어제 신입이 올린 PR. 200줄짜리 함수. "이렇게 하면 나중에 유지보수 힘들어요. 함수 분리하고 다시 올려주세요." Comment 달았다. Request changes. 10분 뒤 슬랙. "선배님 죄송한데 어떻게 분리하면 될까요?" 한숨 나온다. 근데 알려줘야 한다. 안 알려주면 계속 이렇게 짠다. 그럼 나중에 내가 고친다. 결국 화면 공유 켜고 30분 설명했다. 내 일은 언제 하지.기술 스택 선택의 부담 오후 4시. 기획 회의. 새 프로젝트다. 마이크로서비스로 갈지 모놀리식으로 갈지 정해야 한다. 팀장이 나를 본다. "개발님 의견이 어떠세요?" 5명 다 나를 본다. 내가 말하면 그게 결정이다. 팀장은 내 의견에 무조건 동의한다. "전문가가 그렇다는데 그렇게 하시죠." 책임은? 3개월 뒤 문제 생기면? "제 생각엔 일단 모놀리식으로 시작하는 게..." 말하는데 목소리 떨렸다. 근데 이게 맞나.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내가 틀리면 어쩌지. 팀원들 야근시키는 거 아닌가. 직책도 없는데 이런 결정을 내가 해야 하나. 월급은 6500이다. 책임과 권한의 불균형 퇴근길. 지하철에서 생각했다. 나는 사실상 테크 리드다. 팀원들도 그렇게 본다. 기술적 결정은 다 내가 한다. 근데 내 직함은 "책임연구원"이다. 팀장 밑에 그냥 팀원이다. 연봉 협상 때 팀장이 말했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서... 내년엔 올려드릴게요." 근데 후배 채용 공고 봤다. 신입 연봉 4500. 7년차 나는 6500. 3년 일해서 2천 올랐다. 동기 민수는 이직해서 8천 받는다. 리드 개발자 직함 달고. 나는 직함도 없이 리드 일만 한다. 권한은 없다. 팀 예산 결정권 없다. 인력 충원 요청해도 "검토해보겠습니다"만 6개월째다. 근데 책임은 진다. 배포 장애 나면 새벽에 전화 온다. 내가 설계한 거니까. 후배들의 기대 문제는 후배들이다. 진심으로 나를 믿는다. 기술적으로. 신입 박신입은 입사 첫날부터 내 자리 옆에 앉았다. "선배님한테 배우고 싶어요." 2년차 이주니어는 내가 추천한 책 다 읽었다. 클린 아키텍처, DDD, 리팩터링. 다 샀다. 4년차 최선임은 이직 고민 상담을 나한테 한다. 팀장한테는 안 한다. 이 기대가 무겁다. 내가 틀린 방향 알려주면 어쩌지. 내가 잘못된 결정 내리면 다들 따라온다. 근데 나도 확신 없을 때 많다. AWS 쓸지 GCP 쓸지. Redis 쓸지 Memcached 쓸지. 테스트 커버리지 몇 퍼센트까지 잡을지. 정답 없다. 트레이드오프다. 근데 선택은 해야 한다. 내가 선택하면 팀 전체가 3개월 그 방향으로 간다. 이게 리더의 무게구나. 근데 나는 리더가 아니다. 월급도 리더급이 아니다. 인정받지 못하는 역할 더 웃긴 건 윗선이다. 분기 회의 때 팀장이 발표한다. 우리 팀 성과. "저희 팀이 이번 분기에 마이크로서비스 전환 성공했습니다." 박수 나온다. 팀장 칭찬받는다. 근데 설계한 건 나다. 문서 작성도 나. 마이그레이션 계획도 나. 팀장은 회의만 했다. 인사 평가 때도 마찬가지다. "김 연구원은 기술적으로 우수하나, 리더십이 부족합니다." 리더십? 매일 후배 가르치고, PR 리뷰하고, 기술 결정하는 게 리더십 아닌가. 아. 리더십이 아니라 "보고 잘하기"를 말하는 거구나. 팀장한테 잘 보고하고, 임원진 앞에서 발표 잘하는 거. 나는 그냥 코드나 짜는 사람. 근데 실제로는 팀 기술 다 책임진다. 모순이다. 거절의 어려움 요즘 고민이 하나 더 생겼다. 거절을 못 하겠다. 후배가 물어보면 답해줘야 한다. 안 그러면 혼자 삽질한다. 그럼 나중에 내가 고친다. 차라리 지금 30분 쓰는 게 낫다. 근데 이게 매일이다. 하루에 2시간은 후배 도와준다. 내 개발 시간은 6시간에서 4시간으로 줄었다. 퇴근도 늦어진다. 내 일 못 끝내서. 팀장한테 말했다. "제가 후배들 가르치느라 제 일을 못 하겠어요." 팀장 답변. "그래도 팀워크가 중요하잖아요. 김 연구원이 잘 이끌어줘야죠." 이끌라고? 그럼 직책 달아줘. 월급 올려줘. 아무 말 안 했다. 해봤자 소용없다. 이직 고민 집에 와서 이력서 켰다. 6개월 전에도 켰다. 3개월 전에도 켰다. 매번 닫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귀찮다. 면접 준비해야 한다. 알고리즘 공부. 시스템 설계. 포트폴리오 정리. 퇴근하면 기력이 없다. 넷플릭스 켜놓고 폰 본다. 주말엔 늦잠 자고 치킨 먹는다. 코딩 테스트 볼 에너지가 없다. 그래서 계속 미룬다. 근데 이러다가 10년차 되는 거 아닌가. 10년차에도 6500 받으면서 리더 일만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하면 답답하다. 근데 뭐 어쩌겠나. 내일도 출근해야 한다. 애매한 위치 결국 내 위치가 애매한 거다. 리더도 아니고 평팀원도 아니다. 책임은 리더급. 권한은 팀원급. 월급도 팀원급. 가장 불편한 자리다. 올라가지도 못하고 내려가지도 못한다. 팀장은 내가 편하다. 기술 걱정 안 해도 되니까. 나한테 다 맡기면 되니까. 후배들도 내가 편하다. 물어보면 답해주니까. 고민 안 해도 되니까. 나만 불편하다. 근데 말 안 한다. 해봤자 바뀌는 게 없다. 그냥 하루하루 버틴다. 언젠가는 바뀌겠지. 승진하거나. 이직하거나. 아니면 그냥 익숙해지거나. 지금은 그냥 버틴다. 책임감의 무게 솔직히 말하면. 후배들 믿고 따르는 거 나쁘지 않다. 내 말 듣고 성장하는 거 보면 뿌듯하다. 6개월 전 아무것도 모르던 신입이 지금은 혼자 API 설계한다. 내가 가르쳤다. 근데 이 뿌듯함만으로는 안 된다. 책임감만 늘어난다. 월급은 그대로다. 회사는 이걸 안다. 그래서 안 올려준다. 어차피 일 하니까. 내가 바보같다. 거절해야 하는데. 내 일만 해야 하는데. 근데 못 한다. 후배들 보면. 이게 리더의 함정인가. 정식 리더는 아닌데 리더 역할을 하는. 가장 손해 보는 위치. 내일도 멘션 내일 출근하면 또 슬랙 멘션 5개 있을 거다. "개발님 이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럼 또 답할 거다. 30분 써서. 내 일은 점심 먹고 시작할 거다. 퇴근은 7시? 8시? 운 좋으면 6시. 이게 7년차 시니어 개발자의 일상이다. 리더 아닌 리더. 책임만 있고 권한 없는. 월급은 6500. 동기들은 8천. 그래도 출근한다. 어쩌겠나. 이게 내 선택이었으니까. 아니다. 선택이 아니라 흘러온 거다. 7년 일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 내일은 뭐가 달라질까. 아무것도. 그냥 하루가 지나간다. 멘션 5개 답하고. PR 7개 리뷰하고. 회의 2시간 하고. 그렇게 한 달 지나가고. 1년 지나가고. 10년차 되겠지. 그때도 이럴까.정식 리더도 아닌데 리더 대접받는 게 제일 애매하다. 책임은 지는데 돈은 안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