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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만
- 02 Dec, 2025
명절에만 내려가는 지방의 부모님 근황
명절에만 내려가는 부모님 전화는 미루고, 죄책감은 쌓이고 부모님 전화번호. 화면에 떠 있다. 콜. 콜. 받아야 한다. 알고 있다. 손가락이 안 움직인다. '뭐라고 말하지?' 일이 많다고? 그건 이미 알고 계신다. 잠은 잘 잤냐고? 하루에 4시간 정도. 밥은? 라면. 화면이 꺼진다. 응답 안 함. 딩동. 카톡 오셨다. 엄마다. "아들, 괜찮아? 요즘 바쁜지?" 어제 생각났을 거다. 아무 이유 없이.연 2회의 약속 명절. 설과 추석. 딱 2번. "내려올 때 뭐 먹고 싶어?" "그냥 집밥이 좋아요." "에이, 뭘 자꾸 그래. 소고기 구워줄게." 기차표를 끊는다. 4시간. 지방행 기차 안. 옆 자리 할머니가 도시락을 먹는다. 냄새가 좋다. 집이 생각난다. 부모님이 역에 나와 계신다. 엄마 머리가 좀 더 희어졌나. 아빠 등이 굽었나. 작년엔 이렇지 않았는데. '언제 봤더라?' 반년 전. 그 사이에 부모님은 또 반년을 사셨다. 밥상이 차려진다. 아내는 없다. 일이 있다고 했다. 엄마는 알겠다고 하셨다. "일이 많긴 해?" "네. 많습니다." "그래도 밥은 잘 먹어야 해." "네." "고등학교 때부터 밥 못 먹더니 여전하네." 웃음이 나온다. 엄마가 반찬을 또 담아주신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흐르나. 3일이 다가 온다 설날 아침이 거의 다 됐다. 아침 5시. 엄마가 일어나신다. 아빠도. "언제 올라가?" "오후 기차 탈게요." "그래? 일이 많긴 해." 모두가 알고 있다. 내가 떠난다는 걸. 밥을 다시 먹는다. 엄마가 만든 밥. "요거랑 이것도 싸줄게. 기차에서 먹어." 비닐봉지를 줄 번이. 집이 들어있다. 기차역에서. 엄마가 운다. 슬쩍. "또 언제 와?" "추석에요. 6개월만." "그래. 잘 있어. 밥 잘 먹고." 기차가 움직인다. 창밖이 흐릿해진다. 엄마가 손을 흔드신다. 보인다. 보이지 않을 때까지.전화를 받는 이유들 집에 와서 슬랙이 울린다. 배포 브랜치 충돌. 누가 merge 받았어? 일로 돌아온다. 전화는 또 미룬다. 그런데 밤 11시쯤이다. 엄마 전화. "아들, 뭐 해?" "그냥 일이 좀..." "아, 그래. 잠깐만. 아빠 말씀 있으신대." 아빠 목소리. "응? 잘 있냐?" "네, 잘 있습니다." "요즘 회사는?" "그냥 그렇습니다." 얘기할 게 없다. 아빠도 아는데. "그래. 밥은 잘 먹고." "네." 엄마가 다시 받으신다. "오빠네 카톡 봤어? 요즘 애들이..." 듣는다. 일은 손에 있지만 듣는다. 이게 전화의 정체다. 뭔가 중요한 얘기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은 거다. "알았어요, 엄마." "그래. 잘 자고." 끊는다. 슬랙 메시지는 여전히 파란색으로 깜빡인다.죄책감은 내 것 전화를 자주 못한다. 이건 사실이다. 일이 많아서? 피곤해서? 뭐라고 변명할 수도 있다. 근데 다 핑계다. 아내도 엄마한테 자주 전화한다. '뭐 해?' '밥 먹어?' 그 정도. 그런데 난 못 한다. 뭐라고 얘기할지 모르는 게 아니다. 말하는 게 어색해서다. 부모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다. (너무 어색하잖아.) 그냥 밥 먹으라고 한다. 밥이 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부모님도 안다. 명절에 만나서 쓸데없는 얘기 하고 가는 게 전부라는 걸. 그래도 기다린다. 명절을. 명절의 다른 의미 기차표를 끊는다. 달력을 본다. 내 삶에 이 날들이 표시된다. 빨간 날. 명절은 일을 멈추는 날이다. 슬랙을 끈다. 배포를 연기한다. 긴급 버그도 내일이다. 대신 밥을 먹는다. 엄마 손으로 만든. 아빠가 신문을 본다. 엄마가 밥을 담는다. 나는 먹는다. 시간이 멈춘다. 아니, 멈추지 않는다. 그냥 느껴진다. "밥 더 먹어." "고마워요." "뭐 감사해. 엄마 손으로 하는 게 얼마나 남으려고." 며칠이 끝난다. 떠난다. "추석에 또 봐." 그때까지 살아야 한다. 부모님도. 나도. 6개월. 그 사이에 또 뭐가 나이가 들겠지. 전화를 하지 않아도 안다. 부모님은 내 일이 많다는 걸. 내 삶이 바쁘다는 걸. 그래도 기다린다. 내 목소리를. 자주 전화하지 못한다. 명절 때만 내려간다. 그게 전부다.명절 후 기차 안. 창밖은 점점 도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