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From
동기들
- 02 Dec, 2025
대학 동기들 단톡방: 1년에 한 번 보는 우리의 현재
대학 동기들 단톡방: 1년에 한 번 보는 우리의 현재 스탠프만 남기는 채팅창 단톡방 알림. 어제 온 거 같은데 이제 봤다. '안녕하세요 ^^' 누구지? 이름이 안 띄어 있다. 멤버 목록을 본다. 13명. 왜 13명이지? 졸업 당시엔 11명이었는데. 아, 누군가의 남편. 아니면 여자친구. 이제 그 정도 사이가 됐구나. 'ㅇㅈㅇㅇ님이 입장했습니다.' '어어어 환영한다 형!!' 이 문장 뒤에 슬랙 이모지가 3개 따라붙는다. 너희도 개발자네. 그 느낌 안다. 회사에서 슬랙에 이모지 스팸하는 그 문화. 여기까진 따라온 거다. 대학 때는 달랐다. 2020년. 코로나 이전. 우리는 학년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모였다. 학식, 도서관 앞 벤치, 밤새 과제 하는 호실. 2시간마다 카톡으로 '뭐해?' 쓰고, 1분 안에 답장 왔다. 지금은 이거다. 스탠프.'언제 봐?'만 오고 가다 단톡방 검색. 지난 6개월. '언제 봐?' '진짜 봐야겠다' '시간 되면 봐요!' '언제 모여?' '다음 달?' '그 다음 달?' 이 대사들만 15개. 실제로 만난 적? 없다. 작년 명절. 누군가가 '내려간다' 했다. 아, 그때 한 명 봤나? 아니. 그건 전전년도다. 우리는 시간이 없다. 모두가. 금요일 밤. 그게 유일한 기회다. 근데 누구는 배포를 해야 한다고 했다. 누구는 주말에 고쳐야 할 버그가 있다고. 누구는 신입이라 휴가를 못 낸다고. '다음에 진짜 봐' 다음은 언제지? 리더보드를 본다. 채팅 횟수로 순위를 매기는 개발자들만의 오만한 작은 게임이 우리에게도 있었나? 없다. 근데 누가 말을 많이 하는지 본다. 'ㅇㅇ' - 어제 온 스탠프 3개 'ㅈㅇ' - 한 달 전 '안녕' 'ㅎㅅ' - 3개월 전 '요즘 뭐해' 스탠프만 남기는 애들도 있다. 이제 감정 표현도 패킹하는 거네. 최적화. 우리가 배운 게 단톡방까지 왔다. 회사에서 9시부터 6시까지 벨이 9시에 울린다. 9시가 아니라 8시 50분에 나가기 시작한다. '출근한다' 이 한 단어를 누구에게 건넬까? 아내? 아내도 같은 시간에 나간다. 엄마? 엄마는 딸은 신경 쓰고 아들은 알아서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 동기? 아, 그들도 지금 자신의 회사에서 로그인하고 있을 거다. 2023년. 우리는 학교를 나왔다. 그 다음부터가 다항식이었다. 누군가는 대기업 들어갔다. 근데 스트레스 받다가 작년에 스타트업 갔다. 단톡방에 '이직했어요'라고만 적었다. 누군가는 프리랜서가 됐다. '자유롭다'고 했는데, 3개월 뒤에는 '부스러기처럼 산다'고 했다. 누군가는 공무원 된다고 했는데 지금도 시험 치고 있다. 나? 난 동기들보다 좀 더 일찍 들어갔다. 지금 테크 리드다. 직책은 아니지만.공통분모는 한 가지 더 이상 공통분모가 없다. 학교 있을 때 공통분모는 뭐였나. 과제. 시험. 축제. 밥 먹을 때 갈 식당. 서로의 로맨틱한 관심사. 프로젝트 팀. 동아리. 다 외부 강제였다. 제도가 우릴 한곳에 모았다. 지금 공통분모는? "우린 다 개발자야." 그게 다다. 근데 그 안에서도 나뉜다. 프론트엔드 vs 백엔드. Java vs JavaScript. 대기업 vs 스타트업. 계약직 vs 정규직. 우리가 대학에 갔을 때 배운 게 뭔지 생각해본다. 자료구조? 알고리즘? 네트워크? 잘못 배웠다. 우리가 배워야 했던 건 이거다. '떨어져 나가는 방법'. 그래도 가끔 미안한 마음 '형 생일 축하해!' 단톡방에 올라온다. 누가 사실 봤을까? 한 3명. 알람 설정 안 했으니까. 'ㅇㅇ님이 이모지를 보냈습니다' 이모지면 충분하다. 충분해야 한다. 근데 왜 미안한 마음이 생길까. 마치 우리가 함께 늙어가는 게 아니라 각자 다른 타임라인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한 명은 서울에서 일하고, 한 명은 경주로 내려가고, 한 명은 리모트다. 한 명은 결혼했다. 한 명은 결혼할 생각이 없다. 한 명은 고민 중이다. 한 명은 승진했다. 한 명은 계약 끝났다. 한 명은 유학 간다고 했는데 아직 가지 않았다. 우린 같은 시간에 태어났다. 같은 학교에 갔다. 근데 시간이 더 이상 같지 않다. 네트워크 에러다. 패킷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언제 봐?' 그 이후 어제 카톡이 울렸다. '모임 가능한 사람?' 이 문장이 올 때마다 우리의 심장이 철렁 내려간다. '언제?' '이번 달 25일?' 계산한다. 이번 달. 지금 8월이니까. 8월 25일은? 금요일이다. 그 금요일에 배포가 있나? 없나? 구글 캘린더를 본다. 팀 회의. 스프린트 플래닝. 1:1 미팅. 백로그 정제. '그 날 좀 바쁠 거 같은데...' 누군가는 이미 같은 답을 보냈다. '다음 달?' 대화는 여기서 끝난다. 다음 달은 다음 달이니까. 지금은 생각하지 않는다.그런데도 누구는 왔다 작년 가을. 누군가는 정말 왔다. 단톡방에 사진 올렸다. 우리가 다니던 학교. 정문 앞. '돌아왔다' 그 사진 밑에 반응이 확 달라붙었다. '오오오!!' '어디?? 갈께!!' '너 미쳤나? 왜 와??' 반가운 거였다. 정말로. 그 사람은 미국 출장 갔다가 서울 들었다고 했다. 이틀밖에 없다고 했다. 우리는 만났다. 진짜로. 밥 먹으면서 5년을 말했다. 5시간에 5년을 압축했다. 누가 떠나갔고, 누가 들어갔고, 누가 계속 같은 자리 있고, 누가 변했고, 누가 안 변했고. 그리고 그 사람이 떠날 때 우리는 일렬로 버스 정거장까지 따라갔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버스가 떠났다. 그 다음 날 단톡방에 사진이 올라왔다. 비행기 창밖이었다. '또 언제 봐?' 아, 그거요 아, 그거요.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다. 시간은 있다. 부족하지 않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건 다른 거다. 만나면 뭘 말해야 하지? 하는 두려움. 회사 얘기만 할 수도 없고. 그 얘기 하면 한 명은 스트레스 받고, 한 명은 자존심 상하고. 연봉이 나올까봐. 직급이 나올까봐. 결혼 얘기가 나올까봐. 아이 얘기가 나올까봐. 전월세 얘기가 나올까봐. 부모님이 아직 돈 달라고 하냐는 얘기가 나올까봐. 우린 모두가 어쨌든 조금씩 불안하다. 그래서 스탠프만 남긴다. 스탠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미소. 엄지. 불꽃. 더 이상 말할 게 없으니까. 근데 나는 가끔 생각해 만약 우리가 아직도 같은 학교에 있었다면? 과제 같이 하고, 밥 같이 먹고, 밤 10시에 갑자기 누구 기숙사로 모였을 거다. 그런데 우린 여기 있다. 나는 서울에서, 누군가는 대구에서, 누군가는 싱가포르에서, 누군가는 여전히 "취직할 거예요"라고 말하고 있고. 단톡방은 여전히 켜져 있다. 알림은 여전히 울린다. 근데 우린 누구도 댓글을 달지 않는다. 웃음이라도 표현하고 싶을 땐 스탠프를 남긴다. 이게 우리 세대의 우정인가? 아니면 이게 수도권 백엔드 개발자들의 현실인가? 아마도 둘 다. 내일도 같은 알림 내일도 같은 시간에 알림이 울릴 거다. 혹은 주말에. 누군가가 '요즘 뭐해?'라고 쓸 거다. 난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할 거다. 뭐라고 답해야 할까? '일해요' 이것만 쓸 거다. 스탠프 하나 붙이고. '다음에 봐' 이렇게 닫을 거다.언제 봐? 모르겠다. 모두가 바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