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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들은 7천대, 나는 6500만원: 합리화의 기술

동기들은 7천대, 나는 6500만원: 합리화의 기술

술자리에서 들은 숫자대학 동기 모임이었다. 1년 만이었다. 고기 굽다가 준호가 말했다. "나 이번에 연봉 협상했는데." 7200만원이란다. 작년보다 500 올랐다고. 민수가 거들었다. "나도 비슷해. 7100?" 나는 고기를 뒤집었다. 입에서 "오 좋네" 같은 소리가 나왔다. 속으로는 계산기가 돌아갔다. 6500만원. 내 연봉. 700만원 차이. 한 달에 60만원. 세후로 치면... 계산 그만. "개발아, 너는?" 준호가 물었다. "비슷해." 거짓말이었다. "우리 회사 연봉 체계가 좀 달라서." 또 거짓말. 집에 오는 택시 안에서 계속 생각했다. 700만원. 700만원. 창밖을 봤다. 아무것도 안 보였다. 월요일 아침의 합리화 출근했다. 자리에 앉았다. 모니터를 켰다. 슬랙이 떴다. 읽지 않은 메시지 37개. 주말에 쌓인 거다. '준호네 회사는 더 크니까.' 첫 번째 합리화가 시작됐다. 직원 3000명. 우리는 300명. 10배 차이. 근데 3000명이면 더 바쁜 거 아닌가? 아닐 수도. 분업이 잘 돼 있을 수도. '민수는 금융권이잖아.' 두 번째. 금융권은 원래 연봉이 높다. 대신 야근이 심하다고 들었다. 들었다. 확인은 안 해봤다. 커피를 마셨다. 첫 번째 아아. 9시 17분이었다. 영수가 슬랙에 멘션을 날렸다. "형 이거 봐주실 수 있으세요?" PR 링크. 또 시작이다. 코드를 봤다. 변수명이 'data1', 'data2'. 한숨이 나왔다. "여기 네이밍 다시 해봐." 댓글을 달았다. 친절하게. '우리 회사는 여유롭잖아.' 세 번째 합리화. 9시 출근 6시 퇴근. 칼퇴 가능. 가끔. 배포일만 아니면. 그리고 버그만 안 터지면. 그리고 기획 변경만 안 들어오면. 점심시간의 계산김치찌개집에 갔다. 혼자. 사장님이 "어서오세요 김 과장님~" 하셨다. 과장 아닌데. 뭐 됐다. 밥을 먹으면서 폰으로 계산했다. 700만원 차이. 12개월로 나누면 월 58만원. 세후로 치면 43만원 정도? 43만원이면 뭐가 가능한가. 치킨 10번. 넷플릭스 프리미엄 3년 치. 아니면 월세를 좀 더 좋은 데로. 근데 나는 치킨을 월 10번이나 안 먹는다. 넷플릭스는 이미 있다. 이사는 귀찮다. '그럼 연봉이 똑같아도 별 차이 없는 거 아냐?' 이상한 논리였다. 나도 알았다. 하지만 국물을 떠먹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서. "잘 먹었습니다." 카드를 내밀었다. 7500원. 43만원이면 이 밥을 57번 더 먹을 수 있다는 계산이 또 돌았다. 오후 회의에서 3시 회의. 기획팀과. 수진 매니저가 말했다. "이 기능 추가 간단하죠?" 간단하지 않았다. DB 스키마 변경. API 3개 수정. 테스트 케이스 전부 다시. "한 2주 정도 걸릴 것 같은데요." 내가 말했다. "에이~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요." 생각보다? 누구 생각? '준호는 이런 거 안 당할 텐데.' 갑자기 든 생각. 큰 회사는 기획자가 더 전문적일 거다. 개발 공수를 이해할 거다. 아마도. 또 합리화가 시작됐다. '우리 회사는 작아서 소통이 편하잖아.' 편한가? 지금 이 회의가 편한가? 기획자는 내 표정을 보고 말을 바꿨다. "그럼 3주 드릴게요." 1주 더 받았다. 작은 승리였다. 기분이 나아지진 않았다. 회의가 끝났다. 자리로 돌아왔다. 슬랙 알림 12개. '민수네는 이것보단 체계적이겠지.' 또 합리화. 확인해본 적 없는데. 퇴근길의 자문자답6시 45분에 나왔다. 오늘은 일찍 나온 거다. 지하철을 탔다. 자리가 없었다. 손잡이를 잡았다. '나는 만족하고 있나?' 질문이 떠올랐다. 대답이 안 나왔다. 만족은 아니다. 그렇다고 불만도 아니다. 그 중간 어디쯤. '그럼 이직해야 하나?' 이력서 쓰기. 포트폴리오 정리. 코딩 테스트 준비. 면접. 피곤하다. 상상만으로. '지금 회사가 나쁜 건 아니잖아.' 동료들은 괜찮다. 영수는 귀찮지만 배우려고 한다. 기획팀도 나쁜 사람들은 아니다. 그냥 일이 그런 거다. 출퇴근 시간도 나쁘지 않다. 1시간. 딱 봐줄 만. '그럼 이대로 계속?' 대답이 또 안 나왔다. 집 앞 편의점에 들렀다. 맥주 2캔을 샀다. 4600원. 700만원 차이로 살 수 있는 맥주는 몇 캔일까. 또 이런 계산. 웃겼다. 나 자신이. 집에서 아내와 문을 열었다. "다녀왔어." 아내가 소파에 있었다.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저녁 뭐 먹어?" 아내가 물었다. "라면?" 내가 말했다. "좋아." 라면을 끓였다. 물이 끓는 동안 멍하니 냄비를 봤다. '아내한테 말해볼까?' 연봉 차이 얘기. 합리화하는 내 모습. 근데 말하면 뭐가 달라지나. 아내가 "이직해" 할 수도. "괜찮아" 할 수도. 둘 다 듣고 싶지 않았다. 라면이 끓었다. 계란을 넣었다. "오늘 일 어땠어?" 아내가 물었다. "그냥. 평범했어." 거짓말은 아니었다. 진짜 평범한 하루였다. 머릿속만 복잡했을 뿐. 라면을 먹었다. 아내는 디자인 시안 얘기를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중은 안 됐다. 머릿속에선 여전히 계산기가 돌았다. 700만원. 58만원. 43만원. 자기 전 침대에서 침대에 누웠다. 폰을 켰다. 유튜브를 봤다. 개발자 이직 브이로그. 추천 영상에 떴다. "연봉 3000 올렸습니다" 제목. 클릭했다. 5분 보다가 껐다. 부러웠다. 동시에 짜증났다. '나도 할 수 있다.' 생각했다. '하기 싫을 뿐.' 차이가 뭔가.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거랑 못 하는 거. 나는 어느 쪽인가. 모르겠다. 솔직히. '지금도 괜찮은데.' 다시 합리화. 월급은 밀린 적 없다. 야근은 견딜 만하다. 사수 없이 혼자 일하는 거보단 낫다. 근데 그게 만족인가? 아니면 그냥 귀찮은 건가? 폰을 내려놓았다. 천장을 봤다. '동기들이 7천대라는 걸 몰랐으면.' 이 생각이 제일 솔직했다. 모르면 비교 안 했을 거다. 비교 안 하면 만족했을 거다. 아마도. 근데 알아버렸다. 이제 모를 수 없다. 눈을 감았다. 잠이 안 왔다. 내일도 출근이다. 9시. 슬랙 알림. PR 리뷰. 회의. 평범한 하루. 머릿속에선 계산기가 계속 돌았다. 결국 남은 건 아침이 왔다. 알람이 울렸다. 7시. 씻고 나갔다. 출근했다. 자리에 앉았다. 모니터를 켰다. 슬랙. 읽지 않은 메시지 23개. '오늘도 똑같네.' 근데 다른 게 하나 있었다. 어제까지는 이게 당연했다. 오늘부터는 선택처럼 느껴진다. 이직할 수도 있다. 안 할 수도 있다. 연봉을 올릴 수도 있다. 이대로 갈 수도 있다. 근데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안 한다. 합리화만 한다. "지금도 괜찮아." "이직은 귀찮아." "동기들은 환경이 달라." 다 맞는 말이다. 동시에 다 핑계다. 진짜 문제는 뭔가. 만족도 불만도 아닌 이 어정쩡한 상태에서, 움직이기엔 에너지가 부족하고, 참기엔 자존심이 걸린다는 것. 그리고 그걸 인정하기 싫어서 계속 이유를 만든다는 것. 영수가 슬랙에 멘션을 날렸다. "형 이거 봐주세요." 또 PR이다. "어 본다." 답장을 보냈다. 코드를 열었다. 리뷰를 시작했다. 700만원 차이 생각은 잠시 멈췄다. 일은 계속됐다. 합리화도.결국 나는 아직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 내일도 똑같을 거다. 모레도. 언젠가 바뀔까? 모르겠다. 오늘은 일단 커피나 한 잔 더 마셔야겠다.

PR 리뷰하다가 나는 언제 내 일을 하나요?

PR 리뷰하다가 나는 언제 내 일을 하나요?

PR 리뷰하다가 나는 언제 내 일을 하나요? 오늘도 오전 10시가 되기 전에 슬랙에 네 개의 PR 링크가 쌓였다. "개발님, 이거 좀 봐주실래요?" 심장이 철렁한다. 매번 이 문구를 볼 때마다 나는 내가 뭘 하고 있었는지 잊는다. 아, 그래. 나도 해야 할 일이 있었지. 릴리즈 전에 끝내야 할 API 최적화 작업. 어제도 못 했고, 그 앞날도 못 했고, 재작년 같은 계절에도 못 했던 그것. 테크 리드지만 직책은 없는 이상한 위치 사실 지금 이 상황이 되기까지는 논리가 명확했다. 7년을 이 회사에서 일했으니까, 후배들 PR은 내가 봐야지. 아키텍처 결정? 내가 한다. 신입 온보딩? 내가 한다. 레거시 코드 리팩토링 방향? 당연히 내가 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세미 테크 리드가 되어 있었다. 세미가 아니라 완전 테크 리드인데 직책은 없다. 연봉은 6500만원. 동기들은 이미 7000을 넘었다. 관리자가 면개 때 "개발 실력도 좋고 후배들도 잘 챙기시니까 기여도가 크신 거 같아요"라고 했을 때 나는 웃음이 나올 뻔했다. 기여도가 크다고? 기여는 자신의 일을 하는 건데, 나는 지난 3개월간 내 일을 얼마나 끝냈는가.아침 9시부터 체크인까지 5시간의 PR 리뷰 오늘 타임라인을 그려보자.09:30 - 첫 번째 커피 + 첫 번째 PR 리뷰 시작 09:45 - DB 쿼리 부분에서 N+1 이슈 발견, 코멘트 작성 10:15 - 두 번째 PR 도착, 인증 로직 검토 10:50 - 후배 A가 "개발님, 제 코멘트 봤어요?" 11:20 - 세 번째 커피 + 세 번째 PR (Redis 캐시 레이어) 12:30 - 점심 시간, 하지만 마음은 불안함 14:00 - 돌아와서 네 번째 PR 15:30 - "어? 벌써 이 시간?" (내 일은 여전히 0% 진행)12시간 근무 중 진짜 내 업무에 손을 댄 시간은 1시간 미만이다. 그 1시간도 불완전한 포커스다. 체크인 5분 전에 마지막 PR 코멘트를 남기는 나를 보면, 나는 이 회사의 미식축구 쿼터백처럼 느껴진다. 모든 플레이를 지휘하지만, 정작 터치다운은 못 하는 그런 역할. 기획자는 여전히 "간단하겠죠?" 어제 회의에서 기획자가 했던 말. "이거 캐시 레이어 한 번 쉬우신데 이주말까지 가능할까요?" 내가 그 시간에 뭘 할지는 이미 예정되어 있다. 토요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PR 리뷰. 왜냐하면 월요일 배포가 잡혀있으니까. 그리고 그 PR들은 당연히 내가 봐야 한다. 나는 "네, 되겠습니다"라고 했다. 뭐, 또 못할 건가. 못해본 게 어디 있나.슬랙 알림이 가져온 심리적 불안정 가장 힘든 건 타이밍이다. 내가 드디어 우리 서비스의 응답 속도 분석에 집중하려던 순간, 슬랙 알림음이 울린다. 후배A: @개발님 이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후배B: 개발님 한 번 봐주시겠어요? 기획: 개발님 이거 기술적으로 문제 없나요?심장이 철렁한다. 그리고 나는 우리 서비스 응답 속도 문제를 다시 미룬다. 퇴근 후에도 슬랙을 켜지 못한다. 알림이 울릴까봐. 주말 오전 11시에 일어나려고 해도, 핸드폰을 보는 순간 미해결 PR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월요일에는 반드시 돌려야지"라는 의무감과 함께. 내가 원했던 건 이게 아니었다. 단지 좋은 개발자가 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좋은 개발자라는 평가가 내게 준 건 더 많은 시간 투자, 더 많은 책임감, 그리고 정작 성장할 기회의 박탈이었다.그래도 월요일 아침은 온다 내일은 또 어떤 PR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정말 해야 할 일 - 우리 시스템의 구조적 개선, 신입들을 진정한 시니어로 만드는 것, 내가 없어도 팀이 돌아가게 하는 것 - 이런 건 PR 리뷰 때문에 자꾸자꾸 뒤로 밀린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더 열심히 리뷰할수록 후배들이 성장할 기회도 줄어든다. 좋은 코드에 대해 "왜?"라고 물어보고 토론할 시간이 줄어들거든. 이번 주는 다르게 해보려고 한다. 월요일 아침에 내 일을 먼저 진행하고, PR들은... 음, 역시 못할 것 같다. 아, 그거요.테크 리드는 개발자인데, 개발하는 시간이 가장 적다는 게 아이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