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문자: '혹시 확인 가능하신가요?'의 무서움
- 21 Dec, 2025
주말 문자: ‘혹시 확인 가능하신가요?‘의 무서움
토요일 오후 3시 27분
침대에 누워 있었다. 넷플릭스 틀어놓고 폰으로 커뮤니티 보는 중. 딱 이 타이밍에 진동이 왔다.
슬랙 알림.
“김개발님, 혹시 주말인데 죄송하지만 확인 가능하신가요?”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토요일이 끝났다. 정확히는 3시 27분에.

메시지 내용은 안 봐도 안다. “급한 건 아닌데” 로 시작하는 글은 100% 급하다. “시간 되실 때” 라고 쓴 건 “지금 당장” 이란 뜻이다.
물음표 하나가 주말을 파괴한다.
확인하지 말까, 확인할까
5초간 고민한다.
안 본 척? 불가능하다. 이미 슬랙이 ‘읽음’ 표시를 띄웠을 수도 있다. 설령 안 읽어도, 내일 출근하면 “어제 메시지 못 보셨어요?” 가 기다린다.
확인하면? 주말이 증발한다. “네 확인해볼게요” 라고 답장하는 순간, 나는 출근 상태가 된다. 침대는 책상이 되고, 휴식은 업무가 된다.
결국 확인한다. 안 할 수가 없다.

내용을 본다.
“고객사에서 데이터 조회가 안 된다고 하는데, 혹시 서버 확인 부탁드려요. 급하진 않은데 월요일 전에 해결되면 좋을 것 같아서요.”
급하지 않다고? 월요일 전이면 오늘 아니면 내일이다. 이게 급하지 않은 거면 뭐가 급한 건데.
노트북을 켠다
한숨이 나온다.
침대에서 일어난다. 거실로 간다. 노트북 가방을 집는다. 무겁다. 마음이 더 무겁다.
전원을 켠다. 부팅 소리가 주말 종료 알람처럼 들린다. VPN 접속. 비밀번호 치는 손가락이 무겁다.
아내가 거실로 나온다. “왜? 뭐 일 있어?” “응… 좀 급한 거래.”
미안하다는 말은 안 한다. 이미 몇 번을 겪었으니까. 아내는 한숨만 쉬고 들어간다.

모니터링 툴을 연다. 그라파나, 키바나, 센트리. 로그를 본다. 에러는 없다. 데이터베이스 접속한다. 쿼리 날린다. 결과는 정상이다.
10분 지났다. 문제가 없다.
슬랙에 답장한다. “확인했는데 서버는 정상입니다. 혹시 어떤 화면에서 어떻게 조회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답장이 온다. 20분 후에. “아 고객사가 캐시 문제였나봐요. 새로고침하니까 되네요. 감사합니다!”
캐시. F5 한 번이면 되는 걸로 내 토요일 오후가 날아갔다.
그래도 끌 수가 없다
노트북을 닫아야 한다. 알고 있다.
근데 안 닫힌다.
“혹시 또 문자 오면?” 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노트북 켜놨으니까, 그냥 좀 더 보는 게 낫지 않나.
슬랙 채널을 훑는다. 어제 올라온 메시지들. 지라 티켓도 확인한다. 새로 등록된 버그 3건. PR도 하나 올라와 있다. 후배가 올린 거.
“주말엔 안 봐도 되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클릭한다. 코드를 본다. 리뷰를 단다.
“이 부분 null 체크 필요할 것 같아요.”
댓글 남기고 나서 후회한다. 주말에 왜 리뷰를 달았지. 후배가 주말에 수정하면 어떡하지.
너무 늦었다. 이미 후배가 답글을 달았다. “오 감사합니다! 수정했어요.”
주말 근무가 전염된다.
저녁이 되어도
시계를 본다. 6시 반.
아내가 저녁 먹자고 한다. “응, 곧 갈게.”
노트북은 아직 켜져 있다. 슬랙 알림은 여전히 켜져 있다.
치킨을 시켰다. 아내랑 같이 먹는다. 근데 폰은 식탁 위에 있다. 화면이 보이는 각도로.
진동이 올 때마다 시선이 간다. “업무 채널 아니겠지?” 확인한다. 다행히 스팸 문자다.
치킨 먹으면서도 긴장한다. 주말인데 주말이 아니다.
아내가 말한다. “너 맨날 주말에도 폰 보더라. 그냥 알림 끄면 안 돼?”
끌 수 있으면 진작 껐다.
문제는 알림이 아니다. 내 머릿속이 문제다. 알림 꺼도 “혹시 급한 거 왔으면?” 이라는 생각이 든다.
30분마다 슬랙 확인한다. 아무 메시지 없으면 다행이다. 근데 또 30분 후에 확인한다.
이게 주말 근무보다 피곤하다. 차라리 일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요일도 마찬가지
일어나자마자 폰을 본다.
슬랙 확인. 다행히 메시지 없다. 근데 안심이 안 된다. “아직” 없는 것뿐이다.
샤워하면서도 폰을 가까이 둔다. 혹시 진동 소리 못 들을까봐.
점심 먹고 카페 간다. 아내랑. 노트북은 안 가져왔다. 의지의 한국인.
근데 폰은 있다. 핫스팟 켜면 된다. 만약 급한 일 생기면 노트북 가지러 집 갔다 오면 된다. 왕복 30분. 충분히 가능하다.
카페에서 2시간 있었다.
슬랙 17번 확인했다. 메시지는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한다. “오늘은 조용하네. 내일 월요일이 걱정이다.”
주말이 끝나가는데 안도감이 든다. 이상하다. 주말이 끝나는 게 다행이라니.
월요일 출근
9시에 출근한다.
컴퓨터 켠다. 슬랙 연다. 주말 메시지 쭉 확인한다.
토요일 메시지: 캐시 문제 해결. 일요일 메시지: 없음.
결국 토요일 그 한 건이었다.
그 한 건 때문에 주말 이틀을 긴장하며 보냈다. 치킨 먹을 때도, 카페 갈 때도, 자기 전에도.
동료가 말한다. “주말 잘 쉬었어?”
“응, 뭐 그럭저럭.”
거짓말이다. 하나도 안 쉬었다.
그 문자의 정체
“혹시 확인 가능하신가요?”
이 문장이 무서운 이유를 안다.
급하다는 뜻이다. 근데 급하다고 안 쓴다. 완곡하게 물어본다. 선택권이 있는 것처럼.
실제로는 선택권이 없다. “아니요, 확인 불가능합니다” 라고 답할 수 있나? 못 한다. 절대로.
그래서 더 무섭다. 거절 불가능한 부탁. 그게 물음표로 포장되어 온다.
“죄송하지만” 이라는 말도 들어간다. 미안해하면서 부탁한다. 거절하기 더 어렵다.
“주말인데” 라고 명시한다. 본인도 알고 있다. 주말이란 걸. 근데 보낸다. 그만큼 급하다는 뜻이다.
결국 이 문장은 명령이다. 물음표로 끝나는 명령문.
경력이 쌓일수록
신입 때는 달랐다.
주말 메시지 오면 선배가 처리했다. “내가 볼게, 넌 쉬어” 라고 했다.
지금은 내가 제일 시니어다. 주말 메시지는 내게 온다.
후배들한테 떠넘길 수도 있다. 근데 안 한다. 왜냐하면 나도 당했으니까.
“김개발님이 봐주시면 빠를 것 같아서요.” 이 말의 뜻: 다른 사람은 못 한다. 너만 가능하다.
책임감이 주말을 잡아먹는다.
연봉이 오를수록 주말은 짧아진다. 시니어라는 타이틀의 대가.
신입 때는 주말에 연락 없었다. “경력 쌓으면 편해지겠지” 라고 생각했다.
틀렸다. 반대였다.
대응 방법들
방법을 찾아봤다. 커뮤니티에.
“알림 끄세요.” 끄면 불안하다. 이미 답했다.
“회사 핸드폰 따로 쓰세요.” 회사가 안 준다. 개인 폰에 슬랙 깔아야 한다.
“퇴근하면 슬랙 로그아웃하세요.” 해봤다. 30분 버티다가 다시 로그인했다.
“업무 시간 외 연락 금지 문화 만드세요.” 어떻게? 나부터 지키질 못한다.
해외 사례도 봤다. 프랑스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 가 법으로 있다. 부럽다. 한국은 ‘확인 가능하신가요’ 가 문화다.
결국 답은 없다.
회사를 옮겨도 마찬가지다. 어디를 가도 ‘혹시 확인 가능하신가요’ 는 있다.
IT 업계의 숙명. 24시간 운영, 24시간 대기.
진짜 무서운 건
적응한다는 거다.
처음엔 화났다. 주말인데 왜 연락하냐고. 지금은 그냥 확인한다. 당연하다는 듯이.
주말에 메시지 안 오면 이상하다. “오늘은 조용하네?” 라고 생각한다.
평화로운 주말이 불안하다. “월요일에 터지는 거 아니야?” 걱정한다.
이게 무섭다. 주말 근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나.
동기들이랑 술 마셨다.
한 친구가 말했다. “너 주말에도 폰 계속 보더라. 슬랙이야?” “응, 습관이야.”
“끄면 안 돼?” “끄면 불안해.”
친구가 웃었다. “너 중독됐다.”
맞다. 중독이다. 일 중독이 아니라 불안 중독.
그래도
안 볼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생각한다. 무시하면 월요일이 지옥이다. 처리 안 된 이슈가 쌓인다.
주말에 30분 일하면 월요일 3시간 아낀다. 그게 더 낫다. 효율적이다.
이렇게 합리화한다.
아내한테 설명했다. “지금 안 하면 월요일에 더 힘들어.”
아내가 말했다. “그럼 월요일은 언제 또 힘드냐?”
대답 못 했다. 맞는 말이다.
월요일 처리하면 화요일 급한 게 온다. 화요일 처리하면 수요일 급한 게 온다.
끝이 없다.
주말에 미리 처리하는 건 해결이 아니다. 그냥 이슈를 당겨오는 것뿐이다.
이상과 현실
이상: 주말엔 완전히 쉰다.
현실: 주말엔 반쯤 쉰다. 노트북은 안 켜도 폰은 확인한다. 긴급한 것만 처리한다. 근데 모든 게 긴급하다.
타협한다. “토요일엔 확인만, 일요일엔 아예 안 봐.”
지켜진 적 없다.
“오전엔 확인 안 해, 오후에만.” 이것도 안 된다. 오전 10시에 확인한다.
“자기 전엔 절대 확인 안 해.” 누워서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결국 다 확인한다. 규칙은 깨지라고 있는 거다. 내 규칙은.
다른 직군은
디자이너인 아내는 주말에 연락 없다.
“너희는 급한 거 없어?” “있지. 근데 주말엔 안 해.” “그럼 월요일에 늦는 거 아니야?” “늦으면 늦는 거지. 주말인데.”
부럽다.
개발자는 다르다. 서버가 죽으면 매출이 죽는다. 버그가 터지면 고객이 떠난다. “월요일까지 기다려주세요” 가 안 통한다.
그래서 주말에도 대기한다. 소방관처럼. 경찰관처럼.
근데 우리는 수당도 없다.
마케터 친구도 비슷하다. “주말엔 캠페인 안 돌려. 평일에만.”
기획자 친구는 더하다. “주말? 당연히 쉬지. 왜?”
우리만 이렇게 사는 건가.
아니다. 다른 개발자들한테 물어봤다. 똑같다. 다들 주말에도 확인한다.
이게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업계 전체가 이러면 정상인 건가.
언제까지
10년 차 선배한테 물었다.
“선배도 주말에 확인해요?” “당연하지.”
“언제까지 해야 돼요?” “나도 모르겠다. 아직도 하고 있으니까.”
희망이 없다.
은퇴할 때까지? 이직해도? 프리랜서 돼도? 서버가 돌아가는 한, 우리는 대기한다.
365일, 24시간. 실제로 일하는 건 아니어도, 대기는 한다.
이게 개발자의 숙명이다.
코드는 자면서도 돌아간다. 그래서 우리도 자면서 깬다.
폰 진동 소리에.
토요일 오후 3시 27분의 공포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침대에 누워 있다. 평화롭다. 진동이 온다. 슬랙이다.
“혹시 확인 가능하신가요?”
이 문장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주말이 끝난다. 정확히 3시 27분에.
앞으로 몇 시간이 남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출근 모드로 전환됐다.
뇌가 깨어난다. 휴식 모드 종료. 어떤 이슈일까. 심각한 건가. 빨리 처리 가능한가. 생각이 돌아가기 시작한다.
주말은 시간으로 측정되지 않는다. 메시지 하나로 시작되고 끝난다.
“혹시 확인 가능하신가요?”
이게 주말 종료 알람이다.
다음 주말도 똑같을 것이다. 그다음 주말도. 근데 확인은 할 거다. 안 볼 수가 없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