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치킨 배달이 유일한 낙인 남자

주말 치킨 배달이 유일한 낙인 남자

주말의 유일한 낙, 치킨 배달이 오는 그 순간

금요일 퇴근 시간, 나는 벌써 내일 주말 계획을 생각한다. 아니, 계획이라고 하기도 뭐한데, 그냥 루틴이다. 정해진 루틴. 마치 프로덕션 배포 절차처럼 변하지 않는, 그리고 변할 수 없는 루틴 말이다.

회사에서 나오면서 슬랙은 무음으로 돌린다. 월요일 아침까지는 거의 안 봐도 된다는 걸 이제 알았다. 진짜 급한 일이면 전화를 하겠지.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다. 아무튼 그렇게 자유로워진다. 금요일 저녁, 차를 몰고 집으로 향하면서 나는 이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아내다.

아니다. 아내가 아니다. 아내는 주말도 일이 많다. UI 디자이너라는 게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업계가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토요일 오후쯤이면 출근한다. “기획이 밀렸어”라는 메시지와 함께. 나는 이미 여러 번 봤다. “금요일에 더 할 수 있었잖아”라고 말하고 싶지만, 남편으로서의 기본 소양이 아직 남아있어서 그냥 “알았어, 늦지 말고 와”라고 답한다. 얄미운 건, 내가 그렇게 말하면 정말 늦다는 것이다.

그럼 나는?

토요일 아침 10시. 늦잠이 내 주말의 시작이다. 평일에는 7시에 일어난다. 아내도 7시 30분쯤 일어난다. 양치질하고 세안하고 옷 입고 정신없이 집을 나간다. 하지만 토요일은 다르다. 토요일 아침 7시 알람을 설정해놨지만 나는 멍을 때린다. “한 시간 더”라고 생각한다. 그 “한 시간 더”가 얼마나 행복한가.

알람이 또 울린다. 8시 30분. 이제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여전히 침대에서 나갈 이유가 없다. 핸드폰을 집어 들고 회사 단톡방을 본다. 아, 어제 배포한 버그에 대한 메시지가 5개 있다. “나중에 본다”라고 중얼거리고 다시 눈을 감는다.

그렇게 또 한 시간이 지난다.

10시. 정신을 차린다. 아내는 벌써 나갔다. 샤워실에서 나오면서 “점심까지만 와, 저녁은 늦을 것 같아”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차피 내 계획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일어나서 화장실 가고, 세수하고, 냉장고를 연다. 지난주에 샀던 두유, 계란, 상한 것 같은 김치. 밥? 없다. 빵? 없다. 그럼 뭐 먹지?

아, 치킨이다.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벌써 배달 앱을 든다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배달 앱을 킨다. 10시 35분. 한 시간쯤 있으면 배달받을 수 있는 시간이다. 나는 이미 이 시간들을 백분율로 계산한다. 조리 시간 20분, 배달 시간 15분, 기다리는 시간의 여유 20분. 11시 25분쯤이면 초인종이 울린다.

화면을 넘긴다. 어제 먹던 그 닭다리 세트? 아니면 오늘은 순살? 두 가지를 섞어주는 혼합 세트도 있다. 나는 항상 같은 것을 본다. 그 가게. 별점 4.8. 리뷰 7천 개. “역시 여기지”라고 중얼거린다.

사이드 시스템 구축할 때처럼 결정을 내린다. 순살+다리 조합, 소스는 간장, 치즈는 추가. 콜라 2리터. 이걸 본다고 해서 뭔가 건강해지는 건 아니지만, 나는 마치 영양소 계산을 하는 것처럼 “단백질… 칼슘…”이라고 중얼거린다. 수량을 선택하고 주소를 확인한다. 집 주소. 당연히 집 주소다.

결제한다.

버튼을 누르는 그 순간, 약간의 신비로운 설렘이 생긴다. “주문이 접수되었습니다. 가게에서 준비 중입니다.” 알림 메시지. 이제 시작이다. 나는 화면을 계속 본다. “요리 중 70%”… “요리 중 90%”… 그리고 마침내 “배달원이 픽업했습니다.”

11시 10분. 이제부터는 기다림의 순간이다. 게임을 할까? 유튜브를 볼까? 아니다. 나는 배달원의 위치를 추적한다. 지도에 빨간 마크가 움직인다. 우리 동네 골목을 누비고 다닌다. “벌써 여기까지 왔어?”라고 중얼거린다. 마치 실시간 로그를 모니터링하는 것처럼. “배달 예상 시간 5분” 알림이 뜬다.

그 5분이 길다. 진짜로.

세상에 가장 긴 5분은 커피를 기다리는 시간이고, 그 다음이 치킨 배달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나는 현관 문 앞으로 간다. 신발을 신는다. 빼낸다. 다시 신는다. 이게 정상적인 행동일까?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루틴이다.

그리고 초인종이 울린다.

나만의 극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배달원은 손에 따뜻한 포장을 들고 서 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그는 “감사합니다”라고 답한다. 문을 닫는다. 현관에서 거실로 온다. 콘크리트 바닥이 아닌, 정말로 따뜻한 집의 공간이 거기 있다.

소파에 앉는다. 박스를 열지 않는다. 아직 천천히 먹고 싶다. 영화를 킨다. 넷플릭스다. 뭘 볼까? 이미 본 시리즈 목록을 스크롤한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벌써 10번 이상 봤다. “쇼생크 탈출”도 마찬가지다. 결국 나는 다큐멘터리를 켠다. “동물의 세계” 같은 거. 음소거 하고 자막만 켜놓아도 되는 종류의 콘텐츠다.

배경음이 필요할 뿐이다.

이제 박스를 연다. 김이 모락모락 나온다. 그 냄새.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을 때의 그 쾌감과는 다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비슷한 만족감이 있다. 정말이다.

나는 닭다리를 집는다. 한입 물어뜯는다. 바삭하다. 바삭한데 속은 말랑하다. 간장 소스가 입에 퍼진다. 소금기와 단맛의 균형. 이거다. 이게 내가 원하던 거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뭐라고 할까? “주말에 또 치킨이야?”, “항상 같은 거 먹네”, “이게 웰빙이냐”…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그런 목소리들이 들리지 않는다.

음소거된 다큐멘터리에서 수사자가 얼룩말을 사냥한다. 이건 자연의 법칙이다. 나도 이 법칙을 따르고 있을 뿐이다. 내 먹이 사슬에서, 치킨은 정점이다.

두 시간이 흐른다. 박스는 비워진다. 콜라는 반쯤 마셔진다. 나는 소파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일 이유가 없다. 냉장고에서 나온 아이스크림을 집어 들고, 침대까지 걸어가는 거 말고는. 폰을 집는다. 단톡방을 본다. “개발이 뭐 어려운데, 이거 간단하게 할 수 있잖아?”라는 기획자의 메시지가 보인다. 월요일에는 이걸 보고 분노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냥 “내일이 아니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한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한 번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건 아까 봤던 생각이고, 앞으로도 끝까지 생각으로만 남을 것 같다.

완벽한 루틴의 또 다른 이름

누군가는 주말을 낭만적으로 보낸다. 산에 오르고, 영화관에 가고, 카페에서 새 책을 읽는다. 하지만 나는? 나는 집에 있다. 소파에 누워있다. 가끔은 이게 정상일까 생각한다. 34살 남자가 주말에 할 일이 치킨 배달뿐일까?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평일에는 남편이고, 직장인이고, 테크 리드고, 누군가의 코드 리뷰어다. 점심시간 30분이 내 자유다. 연속으로 15분 화장실 들어가는 게 반항이다. 회의 중에 유튜브를 보면서 “아 그거요”라고 답하는 게 내 자존감 유지 방법이다.

하지만 토요일은? 토요일은 내 것이다.

아내가 없고, 업무 메시지도 없고, 기획자의 황당한 요청도 없다. 그냥… 나. 그리고 따뜻한 치킨. 그리고 누군가의 방해받지 않는 자유로움. 이게 뭐 대단한 걸까?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토요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한테는? 이건 지켜내야 할 가장 소중한 루틴이다.

월요일이 오면 다시 시작된다. 시스템은 작동하고, 코드는 배포되고, 회의는 계속되고, 기획자는 또 “이거 간단하죠?”라고 묻는다. 하지만 그 때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알기 때문이다.

다음 토요일이 오면, 또 이 루틴이 반복된다는 것을.

10시 늦잠, 11시 25분 초인종, 2시간 소파. 변하지 않는 프로덕션 절차처럼. 그리고 이게 나를 일요일 밤 일찍 자는 죄책감도, 월요일 아침의 기진맥진함도 잠시 잊게 해준다.

아내는 10시 반쯤 된다고 했다. 나는 “알았어”라고 답한다. 아직 치킨 냄새가 살짝 남아있다. 냉장고에 콜라 반병이 남아있다. 내일도 이 자유로움이 계속되길 바란다.


주말의 진정한 사치는 비싼 것이 아니라,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그 한두 시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