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문화와 싸우는 개발자의 딜레마

야근 문화와 싸우는 개발자의 딜레마

야근 문화와 싸우는 개발자의 딜레마

또 8시

오늘도 6시가 됐다. 퇴근 시간이다. 근데 아무도 안 일어난다.

팀장이 자리에 앉아있다. 모니터를 보고 있다. 뭘 하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메일 보는 중일 거다.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가 있다는 게 중요하다.

옆자리 박주임도 앉아있다. 헤드폰 끼고 코드 치는 척한다. 실제로 치고는 있는데, 급한 건 아닌 거 안다. 오전에 그 작업 끝났다고 했으니까.

나도 앉아있다. PR 리뷰를 한다. 급한 건 아니다. 내일 봐도 된다. 근데 지금 보고 있다.

이상하다. 다들 일이 있어서 남는 게 아니다. 남아야 해서 남는다.

효율성이라는 허상

작년에 책을 읽었다. ‘실리콘밸리 어쩌구’ 그런 제목이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야근하지 마라. 쉬어라. 그게 효율적이다.

맞는 말이다. 실제로 그렇다.

피곤하면 코드 품질 떨어진다. 버그 만든다. 다음날 그거 고치느라 시간 쓴다. 악순환이다.

데이터도 있다. 주 40시간 이상 일하면 생산성 감소한다고. 그래프도 봤다. 50시간 넘으면 오히려 마이너스라고.

알고 있다. 다들 알고 있다.

근데 7시 반이다. 아직도 다들 앉아있다.

효율성? 그런 거 여기선 통하지 않는다. 적어도 우리 팀에선.

회사는 말한다. “워라밸 중요합니다.” 복지 페이지에 써있다. 채용공고에도 있다.

근데 실제로는 다르다.

6시에 나가는 사람? “일 별로 없나보네.” 이런 소리 들린다. 직접 듣진 않았다. 근데 분위기로 안다.

작년에 신입이 왔었다. 매일 6시 10분에 퇴근했다. 3개월 만에 팀 바뀌었다. 공식적인 이유는 ‘업무 적합성’ 문제였다.

그 뒤로 아무도 6시에 안 나간다.

야근의 구조

야근은 전염된다.

팀장이 남으면 주임이 남는다. 주임이 남으면 대리가 남는다. 대리가 남으면 사원이 남는다.

피라미드다. 역삼각형 피라미드.

가끔 팀장이 먼저 간다. “오늘은 약속 있어서.” 이럴 땐 다들 7시쯤 나간다. 그래도 6시는 아니다. 너무 빨리 나가면 이상하니까.

근데 그런 날은 한 달에 한두 번이다.

배포일엔 더하다. 배포는 보통 오후 6시에 시작한다. 왜 6시냐고? 그게 규칙이니까.

배포 준비하느라 4시부터 긴장한다. 5시엔 테스트 서버 확인한다. 6시에 프로덕션 배포한다. 7시까지 모니터링한다. 문제 없으면 8시쯤 퇴근한다.

문제 생기면? 10시다. 운 좋으면.

작년엔 새벽 2시까지 있었다. 롤백하고, 원인 찾고, 다시 배포하고. 퇴근할 때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샀다. 아침인지 저녁인지 모르겠더라.

다음날은? 9시 출근이다. 당연하다. 야근은 자발적인 거니까. 공식적으로는.

싸워봤다

한번 시도했다.

6개월 전쯤. 팀 회의에서 말했다.

“야근 줄였으면 좋겠습니다. 효율성 측면에서도 그렇고요.”

팀장이 고개 끄덕였다. “그러게. 다들 일찍 퇴근했으면 좋겠어.”

끝이다.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다음날? 똑같다. 아무것도 안 바뀌었다.

일주일 뒤 다시 말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야근 건인데요.”

“아, 그거? 근데 지금 프로젝트 일정이 좀 빡빡해서. 마무리되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

프로젝트는 끝났다. 다음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여전히 빡빡했다. 항상 빡빡하다.

2주 동안 나 혼자 6시에 퇴근했다. 실험이었다.

결과? 소외감.

팀원들이 저녁에 얘기한다. 슬랙에. “아 이 부분 김대리님 의견 필요한데.” 나는 없다. 집에 있다.

다음날 아침. “어제 그 건 결정 났어요. 김대리님 의견 못 들어서 아쉬웠는데.”

미안하다는 말투는 아니었다.

결국 다시 남게 됐다. 7시 반까지는.

숫자로 보는 야근

계산해봤다.

하루 1.5시간 야근. 주 5일이면 7.5시간. 한 달이면 30시간.

30시간이면 거의 4일이다. 한 달에 4일을 공짜로 일하는 셈이다.

1년이면? 360시간. 45일. 두 달이다.

연봉 6500만원. 12개월로 나누면 월 541만원. 거기에 두 달 치면… 1082만원.

1년에 천만 원 어치를 공짜로 일한다.

물론 포괄임금제다. 계약서에 ‘월 20시간 야근 포함’이라고 써있다. 근데 실제론 30시간 넘게 한다.

초과 10시간. 시급으로 환산하면… 계산하기 싫다.

동기가 이직했다. 작년에. 연봉 7200 받는다고 했다. 야근? 거의 없다고. 배포 자동화 되어있고, 온콜도 돌아가면서 한다고.

700만 원 더 받으면서 야근도 안 한다.

나는? 여기서 야근한다. 왜? 이직이 귀찮아서.

면접 준비해야 한다. 알고리즘 문제 풀어야 한다. 이력서 써야 한다. 회사 찾아봐야 한다.

근데 야근하느라 시간이 없다.

야근 때문에 이직 못 하고, 이직 못 해서 야근한다. 순환논리다.

문화라는 이름의 감옥

야근은 문화다. 명문화되지 않은 규칙이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다. 공식적으로는. 근데 다들 한다. 안 하면 이상한 사람 된다.

신기한 건 다들 싫어한다는 거다. 야근.

점심시간에 불평한다. “진짜 야근 지긋지긋해.” 커피 마시면서 한숨 쉰다. “오늘도 늦게 가겠네.”

근데 저녁 6시 되면? 다들 앉아있다.

변화를 원하지만 누구도 시작하지 않는다. 시작하면 손해니까. 먼저 나가면 찍히니까.

죄수의 딜레마다. 경제학 시간에 배웠던 거. 다들 협력하면 최선인데, 배신이 두려워서 결국 최악을 선택한다.

우리가 그렇다. 다 같이 6시에 퇴근하면 좋다. 근데 아무도 먼저 안 나간다. 결국 다 같이 8시까지 남는다.

최악의 균형이다. 근데 안정적이다. 아무도 깨지 않는다.

합리화의 기술

사람은 자기 행동을 합리화한다.

나도 그렇다. 야근하면서 생각한다.

“뭐 그래도 요즘 10시까진 안 남잖아.” “다른 회사는 더 심하대.” “원래 개발자가 이런 거지.”

거짓말은 아니다. 다 사실이다. 근데 위안이 되진 않는다.

가끔 반성한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답은 알고 있다. 편해서. 익숙해서. 변화가 무서워서.

이직하면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코드베이스. 새로운 규칙. 적응해야 한다. 증명해야 한다. 피곤하다.

차라리 여기서 야근하는 게 편하다. 적어도 익숙하다.

이직 준비할 시간에 넷플릭스 본다. 주말엔 늦잠 잔다. ‘다음 주부터 해야지.’ 다음 주는 오지 않는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시스템의 문제다. 근데 시스템은 안 바뀐다. 그럼? 내가 바뀌어야 한다.

근데 안 바뀐다. 그냥 야근한다.

해답은 없다

결론은 뭐냐고? 없다.

야근 문화는 당장 안 바뀐다. 내가 바꿀 수도 없다. 회사 전체의 문제니까.

할 수 있는 건 개인적 대응뿐이다.

이직할까? 진지하게 고민은 한다. 근데 실행은 안 한다. 아직은.

효율을 올릴까? 낮에 집중해서 일 끝내고 6시에 나갈까? 시도는 해본다. 근데 결국 남는다. 분위기 때문에.

타협한다. 7시 반까지만. 8시 넘기지 말자. 스스로 선 긋는다. 근데 배포일엔 어차피 넘긴다.

모순이다. 알면서 한다. 비효율적인 걸 알면서 반복한다.

왜? 그게 여기 문화니까. 나 혼자 바꿀 수 없으니까.

결국 적응이다. 불편하지만 참을 만하다. 최악은 아니다. 그냥 그렇다.

언젠가는 바뀔까? 모르겠다. 아마 안 바뀔 거다. 근데 희망은 버리지 않는다. 그게 버티는 방법이니까.


오늘도 8시에 퇴근했다. 내일도 그럴 거다. 모레도.